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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프라우 눈보라와 맞짱…‘빙하에 뜬 철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런 한국인의 선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이제 지구촌에 거의 없다. 남극·북극에서 에베레스트까지 우리 발길이 닿고, 아프리카 사파리와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사진이 블로그에 넘친다. 그러니 스위스 융프라우는 더 말할 게 없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자. 설악산에 가면 관광객들이 몇 시간씩 대기하면서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올라 만학천봉을 만끽한다. 스위스에 가면 산악열차를 타고 융프라우 요흐에 올라 알프스의 파노라마에 도취한다. 그렇지만 권금성만 다녀온 뒤 “나, 설악산 갔다 왔어” 하기는 멋쩍다. 금강굴이나 울산바위, 아니면 비선대나 흔들바위는 보고 와야 설악산 명함을 내민다.

이젠 ‘봤노라, 찍었노라’가 아니라 ‘해봤노라’다. 설악산 비선대에 간 사람은 안내 팻말을 보고 양폭산장까지의 거리를 가늠한다. 희운각까지도 시간을 어림짐작하는데, 눈길은 자꾸 상상봉인 대청봉에 끌린다. 해보는 것은 그냥 보는 것보다 매혹적이어서 깊이와 한계를 헤아릴 수 없다.

지난 10월12일, 스위스 융프라우를 다시 찾았을 때 전망대 밖으로 한 발짝 나서보기로 한 이유도 그랬다. 관광에서 체험으로!

알프스 누비기

①융프라우 눈보라와 맞짱…‘빙하에 뜬 철녀’

노란 산악열차가 가파른 알프스 산록을 덜컥거리다가 끝내 멈춘다. 별천지 눈과 얼음의 나라, 클라이네 샤이데크다. 이른 아침 인터라켄서 '가을'에 출발한 열차는 1시간 넘게 숨차게 치솟아 고도 1500m 위의 '겨울'에 도착했다. 전날까지 영상이던 기온이 눈보라가 기습하며 낮 최고 영하 10도로 곤두박질한 것이다.

금방 클라이네 샤이데크를 덮칠 듯 수직으로 솟은 하늘벽 아이거가 험상궂게 굽어본다. 거무튀튀한 북벽은 두터운 눈 외투를 걸친 것도 모자라 목덜미에 휘휘 눈구름 머플러를 둘렀다. 그 설연(雪煙) 자락이 오른쪽으로 길게 수평으로 날리고 있다. 상공에 강력한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는 증거다.

“아무래도 아이거 아랫길 걷기는 힘들 거 같네요.”

가이드의 한 마디가 한껏 들뜨던 가슴을 헤집는다. 정말 눈 덮인 산에 사람 그림자는 물론 발자국도 없다. 이 먼 곳까지 와서 결국 알프스의 눈길 한번 밟아 보지 못하는 것인가. 웅장하고 호쾌한 아이거·묀히·융프라우의 연봉을 우러러보면서도 그 걱정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빨간 융프라우 등산열차가 승객들을 넘겨받아 급사면을 등반하듯 오르다가 아이거와 묀히의 바위 속으로 들어간다. 52분 뒤 융프라우 요흐 역에 내리자마자 우릴 맞이한 것은 '메이드 인 코리아' LCD 모니터다. 'TOP OF EUROPE' 자막이 지나가고 융프라우요흐의 모습이 구석구석 비친다. 1년 전부터 3454m '유럽의 지붕'을 지키며 각국의 관광객을 안내하는 한국 IT는 당당한 '세계의 지붕'이다. 열차 안에서 한국어 안내방송을 들을 때만큼 흐뭇하다.

그러나 모니터보다 먼저 우리를 반긴 게 고소증이다. 숨이 가쁘고 어질어질 현기증이 나 머리까지 어리벙벙하다. 서울서 날아와 시차적응도 안됐는데 3000m 이상을 단숨에 올라왔으니 남자 셋, 여자 다섯 일행 중에 멀쩡한 사람은 없다.

“빙하 트레킹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가이드의 한 마디에 눈 앞이 환해진다. 관광객의 손에 얹힌 과자를 잽싸게 채가는 샛노란 부리의 알프스까마귀를 뒤로 하고 서둘러 출구로 내려간다. 철문 밖에 나서자 아득히 펼쳐진 만년설에 눈이 부시다. 여기가 그냥 눈밭이라면 세계자연유산이 됐을 리 없다. 우리는 700m 두께로 흘러내리는 유럽 최장의 알레치 빙하 표면에 서있는 것이다.

난생 처음 4000m를 향해 떼어 보는 발길은 아무 생각이 없다. 걸음마처럼 아장거리다가 눈밭에 나온 강아지처럼 뛰기도 한다.

10분쯤 지났을까 뭔가 이상하다.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 듯 가슴이 쿵쾅거린다. 걸음을 멈추고 지친 강아지처럼 입을 벌리고 숨을 헐떡거린다. 아, 고소증! 그걸 깜빡하고 있었다.

“그냥 돌아갈까?”

뒤에서 여자 한 명이 후퇴의 뜻을 비친다. 조금 더 가보자고 격려해 보지만 말뿐이지 거들어 줄 수는 없다.

“묀히 산장에 가면 마운틴 커피가 맛있습니다. 먼저 가세요.”

가이드가 뒤에서 일행을 챙기겠다는 손짓을 한다. 힘내 보자고 스스로 다부지게 마음먹는데, 몇 걸음 못 가서 또 멈춘다. 1분의 숨을 벌어 10m쯤 이동하는 몸짓이 반복된다. 헐떡이는 내 숨소리가 듣기 싫어 억지로 딴 생각을 떠올려 본다. ‘사랑한 후에….’ 두 달 전 여기 어디 눈밭에서 가수 박효신이 뮤직 비디오를 찍었다. 애틋한 노래의 선율이 입가에 감돌지만, 배우 박시연과 나눈 연인의 밀어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제일 앞에서 걷는 사람이 아득히 보이는데 언제 따라가지 하는 생각에 발길이 천근만근이 된다. 작은 체구에 큼직한 카메라 가방을 무겁게 달고서 잘도 걷는다. 누군지 알겠다. 일행 중에서 몸피가 가장 작은 축에 드는 여자 사진작가다. 석 달 전 낭가파르바트에서 숨진 고미영이 꼭 저랬다. 여리다 싶게 호리호리했으나 그래서 날렵했다. 히말라야 8000m 고봉 14좌 등정을 하나 남겨놓은 오은선은 키가 고미영보다 작다. 저기 빙원의 한 점 그녀도 자신에게 '철녀의 피'가 흐르는 줄 이제 알았을까.

갑자기 철녀가 웅크리고 앉는다. 지쳤나 했는데 그녀를 채갈 듯 거대한 눈의 장막이 빙원을 쓸고 온다.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무모한 도전'에 나선 걸까. 여기서 돌아갈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때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 마디가 머리 한구석을 맴돈다. 주식을 움켜쥔 사람들이 좀체 손절매를 할 수 없는 심정을 알겠다.

눈의 장막이 드디어 나도 보쌈을 하듯 감싼다. 온몸을 웅크리고 몸을 돌려 등으로 눈보라를 밀어 본다. 조금씩 조금씩…. 그런데 발이 큰일났다. 등산화 속으로 눈이 들어찬다. '남세스럽게 스패츠까지 필요하겠어' 하고 가져오지 않은 대가를 단단히 치른다. 하늘에는 해가 멀쩡히 빛나고 있는데 이 광풍은 무슨 조화인가. 말로만 듣던 고산의 변덕 날씨가 성깔을 있는 대로 과시한다.

한바탕 난리를 치고 가는 그 놈의 꽁무니 사진을 찍으려는데 못 하겠다. 손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따뜻한 커피 잔을 만지고 싶다.

또! 이번엔 대단한 광풍이다. 몸뚱이가 휙 뒤집어지려고 한다. 잘못하다가는 아래로 굴러 떨어지겠다. 돌아서서 버티다가 아예 웅크리고 주저앉는다. 모자! 귀를 간신히 덮고 있는 모자를 한 손으로 움켜쥔다. 바람에 날아가면 되찾을 수 없다. 알프스의 눈보라도 머피의 법칙으로 부는가. 한 번 오고 나니 숨 돌릴 틈도 없이 파상공격이다.

정말 이러다 어떻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고소증으로 의식을 잃거나 동상에 걸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숨이 갈수록 가빠진다. 숫제 입을 벌린 채로 걷는다. 들숨보다 날숨이 격하다. 이제 3m마다 쪼그려 앉는다.

그래? 해보자! 갑작스레 악이 받친다. 오기다. 위험한 자존심이 목청을 높이기 시작한다.

“산장이다!”

철녀의 목소리다. 바람이 질주해 오는 고개의 왼쪽 비탈에 묀히 산장이 덩그렇게 서 있다. 이제 살았다는 생각에 절로 힘이 솟아 부지런히 잰걸음을 놓지만 마음은 한결 느긋해진다.

고소증이 있더라도 그리 힘든 길이 아니라는 코스 설명도 그제야 기억난다. 따스한 햇볕에 땀까지 나고, 전후좌우의 알프스 파노라마를 만끽하는 여유로운 길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이거 아랫길을 가려다 ‘꿩 대신 닭’으로 선택한 빙하 트레킹인데 와 보니 ‘닭 대신 봉(鳳)’이다. 이렇게 힘들고 위험할 줄 알았다면 애당초 나설 수 없었을 것이다. 융프라우는 ‘변덕스런 처녀’다.

그러고 보니 고마워해야 한다. 언제 우리가 엄홍길·박영석·오은선처럼 허덕거려 볼까. 영하 20도가 넘는 체감온도 속에서 고산 등반의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을까. 1시간 거리를 2시간 동안 죽을 둥 살 둥 걸어오면서 나도 모르는 '등반 본능'을 일깨워 줬으니.

융프라우요흐=배두일 기자

[빙하 트레킹 TIP]

▶복장= 등산화는 꼭 목이 높은 것, 모자는 귀를 덮는 것으로. 방풍복·방한복·장갑·스패츠·목도리…. 겨울 눈산에 간다고 생각하라. 3500m가 넘는 고도에서 날씨는 언제든 악천후로 변한다. 눈보라가 치면 여름에도 체감온도 영하 20도는 금방이다.

▶고소증= 물을 많이 마셔라. 융프라우 요흐에 가면 대부분 중앙홀이나 스핑크스 전망대부터 가는데, 먼저 얼음궁전을 둘러봐라. 냉기가 몸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전망대를 갈 때는 계단으로 오르지 말고 꼭 엘리베이터를 타라. 고소증에는 걷는 것이 쥐약이다. 안내데스크에서 어지럼증을 호소하면 침대에 눕히고 산소마스크를 씌워 준다. 빙하에서는 되도록 쉬었다 걷기를 반복하라. 1분을 서 있으면 10m쯤 걸음을 번다.

“알프스에서 소주폭탄 마시고 개고생”

그날 밤 클라이네 샤이데크 역의 산장 카페는 몹시 시끄러웠다. 옆 자리의 유럽 사람들은 아마 우리가 아이거 북벽을 등반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집에 전화했는데 믿지를 않는 거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4000m를 가 본 사람과 가 보지 않은 사람.”

“사실 우리도 포기했을 거야.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소통이 안 돼 아예 얘기를 못 해서 그렇지.”

“맞아, 누군가 옆에서 철수하자고 했으면 금방 만장일치가 됐을걸?”

“아, 초콜릿! 배낭에 있었는데 왜 인제 생각나지?”

“난 곶감도 있었는데….”

오른 곳이 4000m가 채 되지 않는데도 우린 스스럼없이 ‘4000m의 사나이’ ‘4000m의 철녀’로 규정짓고 있었다. 그뿐이랴. 아예 히말라야 등반의 노하우를 거의 다 터득한 사람들이 돼 있었다.

“우리는 산에 왕초보잖아. 그러니 히말라야 간 거나 다름없어.”

정말 그렇게 힘들었나 보다. 한 사람은 입맛이 없어 식사도 못 하겠다며 잠자러 올라갔다.

“가다 보니 자꾸 나 자신이 변하는 거야.”

'4000m 철녀'의 한 마디가 알프스 무한도전의 상황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했다.

“상황에 따라 내 마음도 단계가 있더라고. 처음엔 갈 만한 거야. 그러다 어, 조금 힘드네 했어. 이 정도야 하면서 참고 계속 갔지. 그런데 한참 오르다 보니, 이거 가야 되나 싶어. 그래서 뒤돌아보면 다들 오고 있어. 할 수 없이 나도 움직여. 마지막 단계가 어떤 줄 알아? 이러다 죽을 수 있겠구나 싶은 거야. 그런데 가슴 속에서 오기가 치밀어 올라. 포기할 수는 없지 하는 자존심이 울컥하지 뭐야.”

“나는 산장의 커피가 맛있다고 해서 그걸 생각하면서 힘을 냈습니다.”

“아, 그거요? 사실 다른 뜻으로 얘기한 겁니다. 맥주를 마실까 봐서.”

가이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겨울이 아니면 눈보라 치는 날이 별로 없다는 얘기였다. 보통 빙하를 걸어 올라도 전혀 춥지 않고 햇볕이 쬐니 땀이 많이 난다. 그렇게 산장에 도착한 한국인들이 목이 말라 시원한 맥주를 찾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술기운이 오르고 산장의 분위기에 한껏 도취돼 갔을 때 누군가 배낭에서 서울서 가져온 팩소주를 꺼냈다.

그들은 알프스 맥주에 한국 소주를 섞어 다국적 소폭(소주폭탄주)을 제조해 돌렸다. 문제는 하산할 때였다. 저마다 뱃속에 퍼부은 폭탄에 고소증이 불을 붙였다.다들 뱃속이 난리가 났고, 파편은 입 밖으로 튀었다.

“알프스에서 소폭 마시면 개고생입니다.”

그날 무한도전 팀은 뺨부터 손발까지 온몸이 얼어 맥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덕분에 무사히 하산해 클라이네 샤이데크의 밤을 어지간히 시끄럽게 했다.

융프라우요흐 글·사진=배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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