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 규명 물건너가나…현재론 출처 추적 쉽지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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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직동팀 보고서로 추정되는 문건의 실체가 밝혀질까. 김태정(金泰政)전 검찰총장이 최병모(崔炳模)특별검사에게 자진 출두해 "문건을 누구로부터 전달받았는지 기억나지 않으며, 또 밝힐 입장도 아니다" 고 표명하고 나섬에 따라 문건의 실체 규명이 물건너간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崔특검은 이에 대해 강력한 수사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그는 "문건의 출처를 밝히는 것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열쇠다. 관련 당사자들을 6하원칙에 따라 추궁해 들어가면 실체가 드러날 수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특검팀 내부에서도 "그리 쉽지 않을 것" 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하느냐" 는 것이다.

金전총장은 특검팀 조사 과정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또 25일 본사와의 전화통화에서 "정확한 기억도 안나지만 검찰총장을 지낸 내가 검찰의 정보입수 과정을 어떻게 언급할 수 있겠느냐. 무덤까지 가져가겠다" 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특검팀이 갖고 있는 단서는 배정숙(裵貞淑.강인덕 전 통일부장관 부인)씨의 변호인인 박태범(朴泰範)변호사가 기자들과 만나 "연정희(延貞姬.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씨가 문건을 裵씨에게 건넬 때 사직동 보고서인 것처럼 얘기했다" 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특검팀 조사에서 정작 裵씨는 그런 진술을 하지 않았다는 게 특검팀의 말이다. 사직동팀 보고서인지 여부를 확인하려면 특검팀측이 사직동팀 관계자들을 전부 소환하거나 아니면 압수수색이라도 해야 할 판인데 그것도 여의치 않다.

문건 자체가 옷 로비 실체와 뚜렷한 인과관계를 갖고 있다고 보기도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주선 법무비서관은 "나는 문건을 전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문건 자체가 사직동팀 보고서가 아니다" 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급기야 '특검팀 내부에선 문건의 실체규명 작업을 둘러싼 견해차로 崔특검과 수사 실무진 사이에서 알력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金전총장의 출두 자체가 이런 앞뒤 사정을 전부 고려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金전총장은 문건의 실체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게 사실이다.

법조계에선 "차라리 나오지 않으니만 못했다" 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金전총장은 부분적인 실익(實益)도 있었다.

부인 延씨가 호피무늬 반코트를 외상으로 샀고 이를 숨기려고 거짓말했지만 로비를 받았다는 그간의 의혹은 일부 해명된 것이다.

그러나 특검이 문건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면 사건이 제대로 종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옷 로비 의혹을 검찰에서 한 것보다 훨씬 자세하고 정확하게 파헤쳤다고 해도 문건 출처 등을 둘러싼 의혹이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특검팀의 최종 발표에서 옷 로비 부분을 이리저리 해명한 뒤 "문건 의혹은 당사자들의 비협조로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 고 한다면 또 다른 정치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에겐 "특검도 못밝히면 도대체 누가 밝히느냐" 는 분노와 좌절감만 남길 수도 있는 것이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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