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NGO, 정부 돈 받아도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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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500여개의 시민단체가 지난해 정부와 산하기구로부터 400억원 넘는 돈을 지원받았다고 한다. 세미나와 토론회, 시민 대상 교육과 캠페인 등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존재 이유는 정부를 감시.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다.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려면 정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긴장관계를 허물어뜨리지 않아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래서 시민단체를 '비정부기구(NGO)'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로부터 거액의 지원을 받고서야 어떻게 정부를 제대로 비판하고 견제할 수 있겠는가.

시민단체들은 정부 지원금을 정당한 용도에 썼다고 항변한다. 실제로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사용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목적이 옳다고 수단까지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정권에 비판적인 신문을 공격하는 데 앞장섰던 시민단체나 낙선운동 등에 참여했던 시민단체들에 수억원의 정부 지원금이 집중된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 그동안 현 정권과 같은 목소리를 낸 데는 이런 막후 거래 때문이었는지 그들은 답해야 한다. 대표적 시민단체인 경실련은 이런 문제점 때문에 2001년부터 정부의 지원을 거절했다.

시민단체의 생명은 도덕성이다. 도덕성을 유지할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다. 여당이나 정권이 시민단체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국민의 세금을 선심 쓰듯 나눠주는 것은 물론 잘못이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이런 유혹에 넘어간다면 그 순간 존립기반을 잃게 된다. 정권이 주는 당근을 받아먹지 않고서는 조직 유지와 활동을 할 수 없다면 그런 시민단체는 해산하는 게 마땅하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시민단체를 한 식구로 만들려는 게 현 정권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부터 정권과 시민단체의 '동반자 관계'를 강조했고, 상당수 시민단체 인사들은 정부기관에 들어갔거나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실패한 정권으로 기록되지 않으려면, 또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시민단체가 되지 않으려면 개운치 않은 돈거래부터 끊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