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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를 넘어 대결에서 대안으로] 16. 영화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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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중앙일보가 밀레니엄 기획의 일환으로 경남대학교와 공동으로 엮는 '세기를 넘어' 시리즈의 열여섯번째 주제는 '영상산업의 총화 - 영화' 다. 20세기의 여명과 함께 탄생한 영화는 금세기의 모든 주름들이 각인돼 있을 만큼 현대의 사회를 반영하고 현대인과 호흡이 잘 맞는 대중오락이자 예술이다.

1895년 '움직이는 사진' 이라는 '마술' 로 시작된 영화는 무성-유성-컬러화 등 테크놀로지의 변천에 따라 변신을 거듭해야 했다. 특히 50년대 TV의 등장에 다소 휘청거렸던 영화는 80년대 이후 멀티미디어 시대로 넘어오면서 힘이 많이 부치는 듯해 보인다.

그런 탓인지 많은 이들이 영화의 소멸과 종말을 얘기한다. 그러나 영화가 빠진 멀티미디어 시대를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앞으로 영화의 존재방식은 무엇일까. 영화의 미래를 클로즈업해 본다. 편집자

프랑스 파리의 상제르망 거리에 자리잡은 MK2는 예술성 높은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극장이다. 파리에만 약 3백개 가까이 있는 소극장 운동의 산실이기도 하다. 최근 영화보다 흘러간 고전영화, 할리우드식 오락영화보다 예술영화를 싼 입장료로 상영한다. 영화를 1회용으로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료로 보관해 반복해서 상영하자는 영화자료 운동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더 강하게 잡아끄는 것은 같은 곳에 위치한 UGC당통과 UGC오데옹이라는 극장이다. 주로 미국 할리우드 영화들을 한번에 대여섯편씩 상영하는 멀티플렉스 극장들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멀티플렉스는 파리시내에서 흔치 않았으나 이제는 야금야금 파고드는 형국이다. 극장 입구에 나란히 걸려있는 할리우드 영화 간판들이 사뭇 위압적으로 보였던 것은 '영화의 발상지' 라는 프랑스도 멀티미디어라는 시대적 대세와 할리우드라는 공룡의 공세에 잔뜩 움추러든 것 같은 모습을 설핏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에서 발행되는 세계 유수의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는 얼마전 '내일의 영화' 라는 주제로 특집호를 냈다. 이 특집호에서 한 평론가는 "컴퓨터가 영화를 망치려 하고 있다" 며 공포감을 드러냈다. 최근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컴퓨터 그래픽과 이미지를 합성하는 모핑 기술 등이 영화가 가진 깊이와 관객의 상상력을 압살할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포레스트 검프' 에서처럼 닉슨 대통령과 포레스트 검프가 악수를 나누게 된다면, 즉 어떤 이미지라도 자유자재로 합성하고 해체할 수 있다면 영상의 '진정성' 을 어디서 찾겠느냐는 우려와도 통했다. 그래서인지 19세기말 '신의 죽음' 을 외쳤던 니체의 경구가 20세기말엔 '영화는 죽었다' 는 메아리가 되어 떠돌고 있다. 과연 영화는 종말을 목전에 두고 있는가.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물에 젖은 물뿌리는 사람' 이라는 짧은 영화를 상영한 이후 20세기를 산 현대인들은,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스크린의 마술에 자신들의 욕망과 희망과 좌절을 투사해 왔다. 그래서 영화관은 언제나 '꿈의 궁전' 이었다. 배우의 짧은 한숨은 나의 고통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은 곧 나의 분노로 관객과 배우는 동일시됐다. 광활한 서부를 달리는 말발굽 소리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귓전을 맴돌았고 주인공의 무용담은 현실의 신산함과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신나는 탈출구였다.

또 영화는 현대인으로 하여금 새로운 시공간 감각을 체득하도록 했다. 흔히 영화를 '도시의 미디어' 라고 부르는 것은 영화의 탄생 및 성장이 도시인의 감각과 정서에 크게 기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도시화가 첨단으로 진행됐던 19세기말의 프랑스 파리에서 영화가 태동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쭉쭉 뻗어난 도로를 따라 길가에 나란히 배열된 백화점 쇼윈도의 화려한 볼거리(스펙터클)는 스크린 위의 볼거리와 비교할 만했다. 특히 기차에 올라 차창을 통해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영화가 제공하는 파노라마적 성격을 떠올리게 했다.

아무튼 조만간 영화는 소멸될 것이라는 전망의 밑바닥에는 비디오.컴퓨터.인터넷 등 전자미디어의 장래에 대한 장밋빛 예측이 깔려 있다. 미래 생활을 다룬 SF소설이나 신문기사에서 흔히 그러듯이 21세기엔 대형 고화질(HD) TV가 설치된 거실에서 리모컨 하나로 보고싶은 영화를 마음대로 불러낼 수 있다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구태여 누가 극장에 가는 수고를 할 것이며, 따라서 영화산업은 쇠퇴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영화의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가파르게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던 영화가 최초로 위기를 맞은 것은 50년대초 TV가 등장하면서였다. TV의 급속한 보급은 극장을 찾는 관객의 수를 현저히 떨어뜨렸다. 또 세계 영화산업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미국의 경우 베이비 붐으로 도시 근교로 인구가 확장되기 시작했고, 도심에서 외떨어진 곳에 살게 된 이들은 힘들게 영화관을 찾기보다 집안의 작은 화면 앞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택했다.

그러나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컬러영화와 화면의 크기를 이전보다 더 크게 늘리는 방식으로 TV에 맞섰다. 때로는 TV용 영화를 제작하면서 가까스로 위기를 헤쳐나갔다.

이제 80년대 이후 전자미디어 기술의 향상은 다시 극장을 안방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영화보다 더 그럴 듯한 모험담이 펼쳐지는 컴퓨터 게임, 디지털 기술에 따른 화질의 향상이 이를 가속화하고 있다.

1896년 파리에서 '라 시오타역에 도착하는 거리' 가 상영됐을 때 관객들 중 일부는 기차가 자신들을 덮치는 줄 알고 객석에서 일어나는 등 소동을 피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스틸 사진이 그랬듯이 '움직이는 사진' 인 '영화' 의 힘은 현실을 모방하는 데서 나왔다.

그러나 이같은 관객(주체)과 영화(대상) 사이의 긴장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뮤직 비디오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 이미지의 과잉.포화현상이 대세가 되고 있다. 문명비평가 폴 비릴리오는 "현실과 사유가 배제된 채 이미지들만 부유하고 있는 현상은 원자폭탄과 맞먹는 재앙을 초래할 것" 이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미디어 기술과는 별개로 영상산업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은 할리우드에 의한 집중화다. 현재 미국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3천만달러. 서유럽 영화의 8배, 한국영화의 50배가 넘는다. 미국의 국내 영화시장은 극장부문만 계산해도 60억달러 이상으로 전 유럽을 합친 것보다 크며 3억달러에도 못미치는 한국 영화시장의 20배가 넘는다. 할리우드 영화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최근 80%에 이른다. 미국 영화산업의 총 매출에서 해외시장으로부터 발생하는 수입의 비중은 59%가 넘는다.

할리우드의 전지구적인 지배는 영화의 미학적 쇠퇴와 함께 각국 영화산업의 쇠퇴를 부른다. 70년대 이후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른 10대들을 겨냥하다 보니 영화는 점점 오락 위주로 흐르게 됐고 그 당연한 결과로 90년대 영화는 소재를 구하는데 한계를 느낀 듯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 등에 기대보지만 기술의존적인 영화로는 다음 세기를 대처하기 힘들어 보인다.

결국 영화의 미래는 현실과 사유를 포함하는 미학을 개발하느냐의 여부와, 영상산업이 할리우드 중심에서 벗어나 얼마나 각국으로 분권화되느냐에 달려있는 게 아닐까 싶다.

베를린.파리.런던.LA.모스크바〓김창호.이영기.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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