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옴부즈맨칼럼] 제목의 가치는 정확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언론에 대한 질타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너도 나도 언론개혁에 대해 한마디씩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제도적인 개혁보다도 기자 본분의 순수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근본적인 자기혁신만이 '병든 언론' 을 살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기자들이 순수한 열정으로 수습과정에서 배웠던 저널리즘의 본질을 겸허하게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도 정확, 둘째도 정확, 셋째도 정확" . 신문왕 퓰리처가 한 이 말은 저널리즘 수업에서 수없이 듣는다. 전통적으로 저널리즘은 '서둘러서 기술하는 역사' 라고 인식돼 왔다. 이처럼 역사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만큼 저널리즘에서 정확성이 중요시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저널리즘의 영역은 1백여년 전 퓰리처가 상상도 못했던 사이버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 사이버 공간을 떠다니고, 거대한 기사 데이터베이스가 언론사별로 또는 통합적으로 구축되고 있다.

저널리즘은 단순히 서둘러서 기술하는 역사가 아니다. 기사는 곧바로 디지털정보로 처리되고,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시로 검색되는 데이터가 되는 것이다. 이같은 변화과정에서 퓰리처의 말은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보의 바다에서 기사는 다른 정보와 쉽게 비교되고 그 정보적 가치를 더욱 엄밀하게 평가받기 때문이다.

기사가 디지털 데이터가 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헤드라인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헤드라인의 정확성이 더욱 강조되는 이유는 기사들이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될 때 헤드라인 중심으로 색인처리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기자들은 기사 본문의 오보 가능성은 물론이거니와 헤드라인의 오도 가능성에 대해서도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문제는 기자들이 아직도 오보문제를 기사내용 중심으로 인식하고 있고, 헤드라인의 정확성 문제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신문들의 헤드라인이 다른 나라 신문들에 비해 크기도 크고 내용도 매우 선정적이며 과장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증면에 따라 연예.오락.스포츠면들이 늘어나면서 이들 면에 쓰이는 야한 구어체 또는 원색적인 비속어들이 포함된 헤드라인들이 서서히 다른 면에까지 침투하고 있다.

얼마전 한 일간지를 읽다가 헤드라인 중 세개에 '왕따' 라는 말이 쓰인 것을 보고 분노한 적이 있다. 실제 '왕따' 현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진지한 보도기사에 비유적으로 그 표현이 사용된 것이다. 이는 청소년들 사이에 번지기 시작한 이상한 말을 결국 우리나라 신문들이 헤드라인을 통해 공인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

좋지않은 것은 완곡어법(euphemism)을 통해 돌려서 표현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관례인데, 특정한 하위문화에서 통용되는 좋지않은 표현을 헤드라인에 크게 부각시킨다는 것은 무책임하다.

최근 눈에 띄게 많이 사용되고 있는 직접인용문형 헤드라인도 정확성을 낮춘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주 중앙일보에서도 직접인용문형 헤드라인을 적지않게 발견하고 실망했다. 정보원이 한 말을 그대로 한 구절 따와서 따옴표 안에 넣은 직접인용문을 헤드라인으로 사용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보도기사에선 자제돼야 한다.

기사 전체의 내용을 정확하게 함축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직접인용문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는 있을지언정 기사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이런 헤드라인은 데이터베이스 과정에서 모호한 검색용어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있어야 할 자리에 들어가지 못해 결국 데이터베이스 자체의 질을 낮추게 되는 것이다.

최선열 이화여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