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당시 참전경험 담아 두권의 책 펴낸 빈센트 코트네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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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8세 캐나다 소년병 빈센트 코트네이. 이름도 생소한 나라, 한국에 파병된지 2주 만에 최전방에 투입됐다. 함께 투입된 중대원 67명 모두 27고지(일명 갈고리 고지)탈환이 첫 전투였다. 이들 신병은 엄청난 포화 속에 고지를 사수하려는 1천5백여명의 중공군과 혈전을 벌였다.

"사흘 밤낮 동안 잠도, 끼니도 다 잊었습니다. 요즘 같은 11월이었는데 그때는 어찌나 춥던지…. 그래도 우리는 마침내 고지를 탈환했죠. "

11월 캐나다 보훈의 달을 맞아 그때의 소년병 코트네이(65)가 노신사가 돼 20명의 동료 재향군인들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국립묘지와 판문점을 방문하고 주한(駐韓)캐나다 대사로부터 '평화의 메달' 을 받기 위해서다.

"당시는 2차대전 직후라 전쟁 영웅이라면 대단하게 여겼죠. 공산당이 평화로운 나라를 침략했다기에 젊은 혈기에 나이까지 두살 속여가며 자원해 입대했습니다. "

이후 고국으로 돌아간 코트네이는 타임.비즈니스 위크 등의 통신원으로 활동했다. 96년에는 52~53년까지 자신의 한국전 경험을 담아 '갈고리 고지를 지켜라' (Hold the Hook)라는 책을 펴냈다.

또 지난 9월에는 캐나다군의 활약상을 기록한 '한국전의 퍼트리샤' (Patricias in Korean War)도 출간했다.

퍼트리샤는 캐나다가 파견한 군대 이름. 이 책은 그동안 한국전 참전 캐나다군의 육성을 실은 책이 없었던 탓인지 벌써 재판을 찍어낼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정찰을 나가 적군과 맞닥뜨렸던 순간이 떠올라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그는 "캐나다군이 목숨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싸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한국과 캐나다 어디건 별로 없다" 며 "이 대목이 무엇보다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고 아쉬워했다.

당시 캐나다군은 병력 규모로 미국과 영국 다음인 2만6천명이 파병돼 5백여명이 전사했다.

앞으로 한국전 관련 집필에만 몰두하겠다는 코트네이는 "우리의 파병이 한국과 캐나다 우호관계의 밑거름이 됐다고 믿는다" 며 "내 책이 한국어로도 번역돼 이런 사실을 알려주기를 바란다" 고 밝혔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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