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씨 '하드디스크 교체'의혹] '엄청난 폭발력'우려 증거인멸 시도한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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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문일현씨는 왜 노트북의 하드 디스크를 폐기했을까. '판도라의 상자' 로 여겨지던 노트북의 하드 디스크가 회사 반납 전날인 지난 2일 교체된 것으로 알려져 온갖 의혹을 낳고 있다.

문제의 하드 디스크는 복구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얘기해줄 결정적 '물증' 이 되리라 기대를 모았던 것. 文씨는 검찰에서 "하드 디스크 내에 개인적인 문건이 여러개 담겨 있어 교체했다" 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원래 하드 디스크는 바꿔준 업자에게 줘 행방을 모른다" 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진술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은폐할 문건이 없다면 30만~40만원이나 하는 하드 디스크를 교체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파일을 지울 수 있다.

사적인 문건이 복구되더라도 회사나 검찰에서 문제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문건들이 저장돼 있어 교체했다고 보는 게 더 자연스럽다.

특히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에게 보낸 사신은 이 속에 수록돼 있었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文씨는 밝힐 수 없는 '모종의 작업' 을 수행했을 거라는 의심을 벗기 어렵게 된다.

더불어 하드 디스크 교체과정에서 다른 인물이 개입하지 않았느냐는 새로운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文씨는 컴퓨터에 대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완벽히 증거를 없앨 수 있는 하드 디스크 교체 방법을 생각해 낼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단순히 파일을 지우는 수준으론 꼬리를 밟힐 수 있음을 아는 전문가가 조언을 해주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현재로는 그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文씨가 종적을 감췄을 당시 도움을 준 인사와 동일인물일 수 있다.

文씨가 교체 당시 업자에게 줬다고 주장하는 원래 하드 디스크의 행방도 의문이다. 文씨로선 자신의 '신변보호' 카드로 이를 활용하기 위해 어딘가에 숨겨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은 文씨의 하드 디스크 교체 경위와 중간에서 도움을 준 사람이 있는지, 문건이 수록된 원래 디스크의 행방 등을 규명해야만 한다.

검찰은 일단 文씨의 진술과 노트북 컴퓨터 분석을 토대로 본래 하드 디스크의 소재를 파악할 단서를 확보한 상태다. 그가 베이징대 부근 전자상가에서 하드 디스크를 교체했다고 말하고 있는데다 반납된 노트북에는 새 버전의 한글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이 심어져 있다.

文씨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베이징대 근처 70여개 컴퓨터 부품점 가운데 삼성전자 하드 디스크 제품과 한글 프로그램을 취급하는 곳으로 범위가 좁혀진다.

이에 따라 검찰은 베이징 현지에 수사팀을 보내는 방안 등 '묘안 찾기' 에 골몰하고 있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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