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관광 1번지 제주' 는 옛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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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5일 우근민(禹瑾敏)제주도지사가 돌연 제주도청 기자실을 찾았다. 얼굴은 상기됐고 무언가 '답답함을 억누를 수 없다' 는 표정이 역력했다.

"자치시대가 되고 난 뒤 '한국관광 1번지' 제주도의 명성은 점차 옛말이 돼가고 있다. " 예산따내는 일이 급해 서울출장이 잦은 禹지사가 서울측 인사등을 만나 느낀, 그리고 다른 지역의 분위기를 전한 말이었다.

禹지사가 풀어낸 내용은 이렇다. "예전엔 외국인이 한국에 발을 들여놓으면 우선 갈만한 곳으로 제주를 손꼽았지만 자치시대가 되고 난 뒤에는 모두들 '자기 고장' 으로 오라고 권유한다. 때문에 제주는 어느새 실상보다 더 과장되게 문제가 포장되고 더 혹독하게 폄하된다. " 그러니 도지사는 요즘 고민이 태산이다.

91년 제정만 해놓고 별다른 중앙정부의 지원조차 담보해내지 못했던 제주도 개발특별법이 2001년 종료시한을 앞두고 있어 개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1년여에 걸쳐 46차례의 도민설명회와 1백44개 기관.단체의 의견접수, 1천7백35건의 여론조사를 끝냈다.

제주관광의 재도약을 위해서도, 지역간 경쟁이 아닌 세계와의 관광시장 경쟁을 위해서도, 국제자유도시 지정을 앞둔 사전정비를 위해서도 시급한 문제이기에 그만큼 준비도 철저했다.

하지만 이미 국회의원 2백20여명이 발의, 국회에 계류중인 이 개정안은 정부부처마다 제각각 다른 의견을 내고 일부 의원들은 총선을 겨냥한 지역이해를 들어 난색을 보여 연내 국회통과는 물건너갈 위기에 처해 있다.

게다가 이 개정안은 요즘 의외의 복병까지 만나 허우적대고 있다. '내국인출입 카지노' 의 독점적 지위보장을 요구하는 강원지역의 목소리에 한발 물러서 국제공항.국제여객선 면세구역내에서만 소규모 카지노를 두겠다는 제주개발법 개정안 조항을 놓고 최근까지도 강원지역단체의 반발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에 자극받은 제주도내 시민단체들은 최근 잇따라 '지역이기주의' 라며 항의성명을 내더니 급기야 10일에는 2백10여개 단체, 1만여명이 참가하는 '특별법 개정촉구 범도민궐기대회' 까지 연다.

도세(道勢)를 운운하던 힘겨루기에서 이제는 지역민간 갈등이 표면화되는 분위기다. '국가경쟁력' 을 염두에 둔 중앙정부의 '조정력' 발휘라는 자치시대의 해법이 필요한 때가 바로 이 시점이다.

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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