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산책] 女權의 깃발 '샤바다 법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프랑스 헌법은 '불변의 진리' 가 아니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지난 58년 샤를 드골 대통령이 제정한 제5공화국 헌법은 지금까지 모두 14번이 개정됐다. 그래서 '누더기 헌법' 이라는 말도 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지난 6월. 여성의 정치적 진출기회 확대가 목적이었다. 헌법 3조와 4조를 고쳐 '선출직과 임명직 공직에 남녀의 동등한 진출을 법을 통해 촉진한다' 는 조문과 '각 정당은 법에 정해진 조건에 따라 남녀의 동등한 공직진출 원칙의 구현에 기여한다' 는 조문이 새로 추가됐다. 프랑스 정부는 개정된 헌법에 맞춰 관련법을 고치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니콜 페리 여권(女權)장관이 최근 성안한 선거법 개정안은 각종 선거법을 적어도 후보 수준에서는 남녀동수를 보장하도록 개정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명 '샤바다 법안' 으로 불리는 선거법 개정안은 다음달 각의를 거쳐 내년초 하원심의에 들어간다.

'샤바다 법안' 에 따르면 비례대표제로 실시되는 각종 선거의 경우 각 정당은 후보 연명부를 의무적으로 남녀동수로 짜게 돼 있다. 지자체 선거와 유럽의회 선거.상원의원 선거 등이 해당된다.

당장 2001년에는 인구 3천5백명 이상의 시의회 선거에서 남녀후보 동수 원칙을 적용하고 2004년부터는 지방의회와 유럽의회 선거에 같은 원칙을 적용하는 것으로 돼 있다. 남녀후보가 같은 수로 돼 있지 않은 후보 연명부는 선관위가 아예 접수를 거부하게 된다. 선거에 참여하려는 정당은 반드시 남녀동수로 후보명단을 구성해야만 한다.

소선거구제로 치러지는 하원의원 선거에선 공천자에 남녀동수 원칙을 적용토록 했다. 각 정당은 전국을 통틀어 공천자 가운데 여성비율이 50%에 달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국가가 지급하는 정당보조금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실효성은 의문이다. 비례대표제 선거의 경우 연명부 일련순서에서 여성후보들에게 주로 뒷번호를 부여한다면 여성 당선자 숫자는 적어질 수밖에 없다.

지역구 공천에서도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선거구에 여성을 집중 공천할 경우 아무 의미가 없다.

따라서 비례대표제 후보연명부에서 남녀 순서를 교대로 배열토록 하거나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1차 투표에서 여성후보가 거둔 득표율을 정당보조금 책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프랑스 하원의원 5백77명중 여성은 62명(10.7%)으로 유럽에서 그리스와 함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스칸디나비아의 경우 50%에 달한다. 대학진학률에서 여성이 남성을 앞지른지 이미 오래고 '법조.의료.교육.연구분야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남성과 거의 대등한 수준이지만 정치분야에서 만큼은 프랑스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프랑스 영화 '남과 여' 의 사운드 트랙에는 '샤바다 바다바다바…' 라는 스캣효과음이 후렴처럼 반복된다.

'샤바다 법안' 이란 이름에는 이 영화 제목처럼 남자후보 한명에 여자후보 한명을 반복 배치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남녀의 정치적 평등을 이룬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도빌해변을 달리는 아누크 에메와 장 루이 트랭티냥을 위해 매혹적 주제곡을 작곡한 프란시스 레이는 자신이 만든 '샤바다' 의 효과음이 30년후 남녀의 정치적 평등을 촉진하는 효과음이 될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배명복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