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새로운 장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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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61년 8월 13일 새벽 1시 동독정부는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가는 모든 통로를 차단했다. 그리고 이틀만에 베를린 한가운데 높이 5m.길이 45㎞의 시멘트 벽돌담이 세워졌다. 그후 견고한 콘크리트 장벽으로 변했으며, 서베를린 주위로 1백20㎞의 장벽이 추가로 세워졌다. 그동안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79명에 달한다.

베를린장벽은 동독으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기술자.지식인 등 전문인력의 탈출로 동독경제는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었다. 동독정부가 수립된 1949년 10월부터 61년 8월까지 2백69만명이 서독으로 넘어갔으며, 이중 61%가 베를린을 경유했다.

특히 61년엔 경제사정 악화로 탈출자가 급증했으며, 8월 들어선 불과 2주동안에 4만7천명이 탈출했다. 동독은 베를린장벽이 사회주의 독일을 지키는 '반(反)파시즘 방벽' 이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동독인들의 탈출을 막기 위한 '도망 방벽' 이자 사회주의체제의 열세를 그대로 보여주는 치욕적인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비단 동독 공산주의자들뿐 아니라 다른 나라 공산주의자들도 치욕으로 생각했다. 니키타 흐루시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제1서기는 베를린 장벽을 '추한 물건' 이라고 혹평했다.

베를린 장벽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은 89년 1월 "존재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사라지지 않는 한 50년이고 1백년이고 남아 있을 것" 이라고 호언했다.

그해 여름 헝가리로 휴가를 떠났던 동독인들의 집단탈출이 일어나자 10월 18일 호네커는 서기장직을 사임했다. 호네커가 실각한 지 3주만인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이듬해 10월 3일 마침내 독일은 통일됐다.

어제로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독일은 아직 진통을 계속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격차다. 통일 후 1조5천억마르크를 동독에 쏟아부었지만 동독인들의 수입은 서독인들의 75%에 머물러 있다. 실업률도 서독의 2배인 17~18%다.

더 큰 문제는 사회적 이질감(異質感)이다. '오시(동쪽사람)' 와 '베시(서쪽사람)' 간 갈등은 새 장벽을 쌓고 있다. 동독인들 가운데는 옛 동독시절이 그리운 '오스탈기' 가 싹트고 있다.

독일 언론인 테오 조머는 "독일통일은 아직 반(半)제품 상태" 라고 말한다. 반세기 동안 갈라져 살아온 두개의 독일이 하나가 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고비가 많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남북통일도 독일통일처럼 어느날 갑자기 찾아올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인들이 겪고 있는 경험은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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