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기술자 이근안 자수] 비호세력 없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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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근안(李根安)씨는 주위의 도움 없이 숨어지낼 수 있었을까. 李씨는 "수배 이후 첫 1년동안 동료 경찰관들이 아내에게 생계비조로 매달 수십만원씩 줬을 뿐 이후에는 주위의 별다른 도움을 받지 않았다" 고 주장했다. 부인 申모(60)씨도 "미용실을 운영하며 스스로 생계를 해결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주위의 도움을 받지 않고 10년10개월 동안 가족과 함께 자택에서 숨어지냈다는 李씨의 주장은 여러모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찰과 경찰이 수사와 검문검색을 하는 가운데도 집에서 지내기란 누군가의 비호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93년엔 홍준표(洪準杓)검사를 수사 책임자로 임명하는 등 대대적인 검거작전을 벌였으나 李씨의 행적을 단 한번도 파악하지 못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吳昌翼)사무국장은 "연인원 3백98만명을 동원하고 5백만장의 수배전단을 배포하며 검거에 총력을 기울였는데도 '10년이 넘도록 집에 숨어있었다' 는 李씨의 말을 믿을 수 없다" 고 밝혔다.

더구나 李씨의 주장대로라면 세차례 이사를 하면서 부인이 경영하는 미장원에도 수시로 드나들었는 데도 목격자가 전혀 없었다는 점은 李씨가 다른 사람이나 조직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택 이외의 다른 장소에서 숨어지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인권단체 관계자는 李씨가 근무했던 경찰 대공분실의 특성상 반드시 도움을 주는 비호세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특수업무를 담당하는 까닭에 동료애가 강한 대공분실의 경우 정권이 교체돼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유대감이 강하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세력들이 李씨의 뒤를 봐줬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동료들의 재판결과를 보고 가족회의를 거쳐 돌연 자수를 결심했다는 李씨의 자수 동기도 석연치 않다.

특히 李씨는 검찰에서 "해외로 도피하지 않고 국내에서 생활했다" 고 밝혀 공소시효를 염두에 두고 도움을 준 사람들이나 조직과 미리 입을 맞춘 것 아니냐는 의문을 사고 있다.

국내에서 숨어지냈을 경우 李씨는 김근태(金槿泰)씨 고문사건과 관련, 공소시효가 완성돼 형량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모든 점을 감안할 때 李씨는 자신이 밝힌 가족의 도움 이외에 근무했던 경찰 조직이나 유관기관, 그리고 지인의 보호를 받았을 것이라고 李씨의 행적을 캐고 있는 검경 수사관계자는 판단하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박내군(朴來群)사무국장은 "도피 경로와 李씨를 감싸안은 조직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하며, 李씨 검거를 사실상 방조한 관련 관계자는 문책해야 한다" 고 말했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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