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지도자 구스마오 단독 인터뷰] '독립준비 2~3년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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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아틀라리(동티모르)〓김종문 기자] 28일 오전 6시(현지시간) 동티모르 독립운동가 사나나 구스마오가 머물고 있는 아틀라리 마을로 떠나는 상록수부대의 군용 지프에 몸을 실었다. 상록수부대는 이 마을의 다국적군과 모종의 협의를 위해 가는 길이었다.

로스팔로스에서 아틀라리까지 80여㎞. 첩첩산중의 비포장 낭떠러지 길을 돌고 돌았다. 일행은 온통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운전병은 수백m의 절벽 아래를 흘끔거리며 내내 긴장을 풀지 못했다. 팔린틸(FALINTIL.동티모르 민족해방군) 제1지구대 본부' 에 도착한 것은 덜컹거리며 달린 지 두시간 만이었다.

팔린틸은 무장독립단체의 주력. 주변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아틀라리 마을은 입구부터 경비가 삼엄했다. 인도네시아군으로부터 뺏은 M16 소총에 실탄을 장착한 전사들 수백명이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경비병의 안내를 받아 지휘부 건물로 들어섰다. 옥수수 줄기.야자나무 잎으로 얽어 만든 20여평 크기의 초라한 진흙집이었다.

건물 주위에는 팔린틸을 상징하는 하늘색.흰색.녹색의 삼색기가 펄럭이고 산골마을치고는 어울리지 않게 5천여명의 주민들로 붐볐다. 구스마오를 보기 위해 인근지역에서 몰려든 사람이었다. 이들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잔칫집 분위기였다.

구스마오는 이 움막에서 팔린틸 지도부와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한참이나 기다린 끝에 얼룩무늬 군복차림의 구스마오가 걸어나왔다. 지난 18일 호주 다윈에서 가진 공동기자회견에 이은 두번째 상면이다.

그도 기자를 알아봤다. "어, 이곳까지 찾아오셨군요" 하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시간에 쫓기는 그의 일정을 배려해 곧바로 질문에 들어갔다.

- 오늘 회의내용은.

"팔린틸 동지들과 그동안의 투쟁과정을 이야기했다. 앞으로 완전독립을 위해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토론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팔린틸과 동티모르 저항국민회의(CNRT)가 주민구호활동에 앞장설 수 있는 방안도 논의했다.

앞으로도 계속 동티모르 전지역을 방문, 지역대표와 주민들을 직접 만나 모든 문제들을 이야기할 것이다. "

- 동티모르 주민들의 당신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다.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존경심이라기보다는 오랜 시간 싸워왔던 팔린틸과 우리 동지들에 대한 신뢰감 및 애정의 표현일 것이다. 나 또한 민족을 사랑하고 동지를 사랑한다. "

- 향후 독립과정과 팔린틸의 조직개편 방향은.

"지난번 다윈의 기자회견 때와 별 차이가 없다. 유엔과 긴밀한 협조체제에 있고 정치적.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2~3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유엔임시행정기구(UNTAET)에 참여할 예정이다.

처음에는 팔린틸도 발전적으로 해체할 생각이었지만 나라가 완전히 파괴된 상황에서 소규모의 군대로 전환, 국방 등 필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구상 중이다. "

- 현재 동티모르 치안상황은.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로스팔로스 등 동부지역에서 딜리까지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서티모르와의 국경지역에선 20% 정도 불안요인이 남아 있어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서티모르에 있는 외쿠시 지역에선 아직도 동티모르 난민들의 불행이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

- 한국군과 한국민들에게 전할 말은.

"정말 고맙다. 오늘도 로스팔로스 지역대장인 파우스티노에게서 자세한 보고를 받았다. 많은 도움을 준 데 대해 감사한다. 앞으로도 계속 협력했으면 좋겠다.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돕고 싶다. "

- 한국은 식민지.독립.경제성장의 경험을 갖고 있다. 한국민들은 동티모르사태를 매우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나의 부모 세대도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24년간을 투쟁했다. 포르투갈 식민시대까지 합치면 4백여년간을 기다려온 것이다.

한국은 이제 모든 것을 갖춘 큰 나라다. 막 시작하는 작은 나라인 우리를 지켜봐 달라. 우리는 많은 조언을 필요로 한다. "

30분간 영어로 진행된 인터뷰를 끝내자 이번에는 구스마오가 "시간이 늦었으니 함께 식사나 하고 가라" 며 소매를 붙잡았다. 그러나 이미 해가 기울고 낭떠러지와 밀림을 헤치고 로스팔로스로 돌아가려면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기자와 한국군 일행은 구스마오와 팔린틸 대표들과 포옹을 나눈 뒤 곧바로 지프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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