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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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은 겸재 정선의 그림이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가는 마음의 여행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책 저자의 말을 빌리면 그 여행은 "겸재가 서울에서 출발하여 사생답사해가던 노정을 따라 그 그림을 감상" 해나가는 여행이다.

그 여행에서 우리는 화적연과 삼부연으로부터 시작해서, 만폭동과 비로봉, 해금강을 거쳐 월송정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겸재의 그림이 안내하는 이 여행은 공간 속의 여행이면서 동시에 시간 속의 여행이기도 하다.

우리는 진경산수의 대가라는 겸재와 더불어 금강산의 구석구석을 유람하는 동안 내내 묵은 한지에서 배어나오는 시간의 흔적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은은한 향취에 취한다.

그것은 아마도 봉래호를 타고 가는 금강산 여행에서는 맛볼 수 없는, 시간의 풍화를 견디어온 겸재의 그림만이 우리에게 주는 여행의 즐거움일 것이다.

겸재의 그림 속에서 금강산은 매우 여성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백두산이 남성적인 선과 위용을 지닌 무뚝뚝한 산이라고 한다면, 겸재의 그림 속에 담긴 금강산은 확실히 부드럽고 여성적인 자태를 지니고 있다.

겸재의 어느 그림을 보아도 금강산은 인간을 위압하는 산이 아니라 인간을 품어 안는 산이다. 이를테면 '금강전도(金剛全圖)'나 '금강내산총도(金剛內山總圖)'를 가득 메우고 있는 각종 기암괴석들은 날카로운 직선으로 부질없는 위용을 자랑하는 대신, 각지거나 모나지 않은 곡선으로 풍경 전체를 아늑하게 어루만져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단발령망금강산(斷髮嶺望金剛山)' 의 아련한 산안개 속에 잠겨 있는 크고 작은 바위들은 또 얼마나 올망졸망 정답게 모여 옹송거리고 있는가.

음양의 완벽한 조화를 구현하고 있는 그림이라고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가 겸재의 그림 속에서 보는 것은 자연과 인간을 잇는 어떤 넉넉한 포용의 시선이다.

산과 산 사이의 골에는 어김없이 사찰이나 인가가 들어서 있고, 골 사이를 흐르는 물의 길과 사람이 길이 구별되지 않는다.

또한 거대한 산 속에 들어 있는 인간의 작디작은 모습도 자연의 위용에 압도당한 모습이 아니라 그 위용을 즐기는 여유자적한 모습이다.

겸재의 그림과 함께 하는 금강산 여행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만나게 되는 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대신 자연 앞에서 겸허할 줄 알고 자연과 더불어 그 속에 인간의 체취를 담아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옛사람들의 조화와 풍류의 정신인 것이다.

박혜경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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