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회복 질이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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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우리 경제가 중심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혼조(混調)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실물경기는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여 올 경제성장률이 9%에 이르고, 수출은 사상 처음으로 1천4백억달러를 돌파할 전망이다. 9월의 실업률은 4.8%로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20개월만에 4%대로 떨어졌다.

이런 실물경제의 호전과는 대조적으로 금융시장은 여전히 불안하고, 실제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와 지수경기간에 적잖은 괴리를 보이고 있다.

경제통계의 착시(錯視)현상으로 성장률이 실제보다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데다 기업 및 금융기관의 부실문제 등 경제 내부의 구조적 불안요인은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사실 급속한 실물경제 회복은 팽창적인 재정.통화정책과 엔고에 따른 수출증가에 크게 기인한 것일 뿐 구조적 취약점의 해소와는 아직도 거리가 멀어보인다.

실업률이 크게 낮아지긴 했지만 일용.임시직의 비율이 높아져 고용구조는 도리어 악화되는 추세다.

구직활동을 아예 단념하거나 포기한 수많은 실망실업자들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경제지표 뒤에 숨은 문제점을 직시하고 경제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급속한 회복은 물가상승을 동반하는 데다 우리의 경우 소득증가를 크게 넘어서는 소비확대가 회복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게다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경기부양적 선심정책을 양산할 경우 물가 급등 속의 경기침체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이런 위험을 경고하며 과감한 구조조정의 이행을 촉구한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그러잖아도 공적자금 지원을 통한 인위적 경기회복에 대한 바깥의 경고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부실기업과 은행들을 공적자금으로 연명시킬 경우 당장의 실업증가는 막겠지만 외부의 돌발변수에 따라 자본시장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는 날이면 신용경색과 금융위기를 한꺼번에 불러올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현재의 'V' 형 회복이 지속적인 상승무드를 타지못하고 'W' 형으로 다시 꺾일 가능성도 예견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부실처리의 조속한 매듭과 재정.통화 긴축을 통한 총수요 조절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금융불안이 해소돼야 단기 부동자금이 장기 투자자금으로 전환돼 설비투자를 뒷받침하고, 그에 따라 성장잠재력이 확충돼야 실업문제도 근본적 해결이 가능하다. 다만 선제적(先制的) 물가정책으로 단기금리를 올리는 문제는 신중을 요한다. 어렵게 유지해온 금리 안정기조를 뒤흔들어 금융구조조정 자체를 그르칠 우려가 더 크기 때문이다.

소비주도에 의한 경기회복은 스스로 한계가 있고 과도한 소비증가는 무역수지를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아직은 소비를 절제하고 누적된 부실을 떨어내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총선을 의식해 경제현상을 실제 이상으로 부풀리거나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것만큼 우리 경제회복에 위험한 것도 없다는 것을 특히 정책당국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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