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중국동포는 왜 한·중·일 3개 국어 능통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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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주 이 난에 한자의 유용성에 대한 글을 쓴 후 여러 의견이 담긴 전화와 e-메일을 받았다. 적잖은 분들이 한자교육의 전면적 부활이나 한글·한자 병용으로의 회귀를 걱정했는데 내가 말하려 했던 것과는 좀 차이가 있어 먼저 짚고 가려 한다.

나는 한글을 위해서도 한자교육은 필요하다고 믿지만, 현재의 한글전용 표기가 올바른 방향이라는 점 또한 확신한다. 발음은 같되 뜻이 다른 단어의 오용 가능성을 지적하는 분들이 있지만 그 차이는 구문상에서 이해하면 된다. 정 필요하면 ( )안에 넣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또 하나 내가 주목했던 건 동북아 시대의 도래와, 동북아에서 한자가 갖는 유용성 문제였다. 현대 중국어와 우리 한자어 간의 간극을 지적하는 분이 많은데, 그래도 여전히 수많은 단어가 우리가 아는 뜻으로 쓰이고 있고, 중국어 외래어도 우리말 한자음을 아느냐의 여부가 단어를 유추하고 기억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일본 한자어는 우리와 쓰임새가 아주 가까워 한자의 뜻만 제대로 안다면 한자어만 꿰맞추어도 웬만큼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한자가 어렵고 불편해도 어차피 중국이 새 표기방식을 찾을 리 만무하고, 일본 또한 가나·한자 병용 방식을 바꿀 리 없다. 모든 소통의 기본이 언어라면 동북아에선 그 바탕에 한·중·일 모두 익숙한 한자가 있고, 우리만 이를 외면해 유용한 소통도구 하나를 잃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언어 문제가 나온 김에 하나 더 얘기하자. 바로 192만 명(2000년 인구센서스)에 이르는 중국 조선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출장 길에서나 한국에서나 연배가 그리 높지 않은 조선족들을 만날 때 놀란 적이 꽤 있다. 적잖은 분들이 일본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우대정책 일환으로 대학 진학 때 영어가 아닌 다른 외국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조치가 만들어낸 결과다. 많은 조선족이 외국어로 우리 말과 문법이 비슷하고 한자어가 많은 일본어를 선택했고 그 결과, 중국어·한국어는 물론 일본어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계층이 형성된 것이다. 물론 중국에서 사업하는 분들로부터 용어가 적잖게 다르고 특히 외래어 계통의 전문용어에 대해선 의사소통에 애로를 겪는 일이 제법 있다는 말을 들었다. 또 몇 세대를 지나오면서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게 형성됐고, 제대로 풀리지 않는 비자 발급 문제나 한국에서의 직·간접 차별경험 때문에 ‘조국’에 대한 애착이 흐려진 면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이를 함께 고치고 풀어나가면 한·중·일 3개 국어로 소통할 수 있는 중국 조선족의 존재는 동북아 시대에 아주 유용한 인적 자산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이를 뒷받침해 가능성을 현실적 자산으로 만드느냐, 그 길을 찾는 건 우리 몫이다.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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