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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희망’이 노벨 평화상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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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데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당연한 것 같다. 오바마는 아직 그 어느 곳에도 평화를 정착시키지 못했다. 게다가 노벨위원회의 후보 추천 마감일을 고려하면 그는 취임 뒤 11일 만에 후보가 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이 상은 노르웨이 의회에서 뽑은 5명의 의원이 수상자를 결정한다. 위원회의 의장은 노르웨이의 전 총리이자 현 국회의장인 토르비에른 야글란이다. 그런데 이 노벨위원회가 오바마의 핵 없는 세상에 대한 비전을 높이 사면서 그가 국제정치에 새로운 환경을 조성했다고 평가했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세상 사람들의 관심과 희망을 오바마만큼 불러일으킨 인물도 별로 없다고 본 것이다.

1901년부터 89차례 수여된 이 상의 수상자들을 살펴보면 다소 우울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적십자사·유엔난민기구 등 몇몇 단체를 제외하면 대체로 유야무야된 시도, 폐기된 합의, 별 효과 없는 조약들과 관련된 개인들이 상을 받았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러일전쟁을 끝내는 포츠머스 조약을 이끌어내 상을 받았지만 두 나라는 잠시 휴전했을 뿐이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국제연맹에 대한 지원으로 상을 받았으나 그는 미국의 가입조차 성사시키지 못했다. 이후 이 조직은 파시즘의 기승으로 완전히 붕괴됐다.

이런 역사를 놓고 보면 노벨위원회의 정치인들이 오바마의 희망에 찬 발언을 높이 평가한 게 그다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오바마는 많은 유럽인에게 변화의 목소리로 통한다. 국제 외교의 리더로서 미국의 역할을 선언한 데다 오바마 스스로 진보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45년 전 또 다른 미국 흑인인 마틴 루서 킹 목사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을 때를 떠올리고 있다. 당시 미국에선 인종차별을 둘러싼 분쟁이 한창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은 흑인 대통령을 선출한 반면 유럽은 요즘 인종과 민족 갈등을 겪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의 건전한 사고를 높이 평가한 노벨위원회의 결정이 미국의 분파적 정치에 좋은 영향을 주기는 힘들 듯하다. 보수파들의 블로그엔 노벨 평화상 선정이 ‘소수자를 위한 할당제 차원’이란 글이 오르고, 오바마가 수상을 위해 아프간에 대한 추가 파병 발표를 미뤄왔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야당이 대통령에게 형식적인 축하조차 하지 않는 일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힘든 일이다. 심지어 공화당의 전국위원회 의장인 마이클 스틸은 오바마가 소감을 밝히기도 전에 그의 수상을 깎아내렸다.

노벨상엔 특별한 무게감이 있다. 이번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헤르타 뮐러의 책 『초록 자두의 땅』은 아마존닷컴의 판매 순위 5만6359등에서 수상자 선정 하루 만에 7등이 됐다. 그러니 오바마가 노벨 평화상으로 좀 더 주목을 받는다 한들 뭐가 문제인가.

팀 러튼 LA타임스 칼럼니스트
정리=이상언 기자, [LA타임스=본사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