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1인당 GDP 3만 달러, 내수가 보약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7면

이번 금융위기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가 얼마나 위기에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위기의 진원지는 미국이었으나 정작 가장 타격을 받은 곳은 아시아 수출국이나 대외부채가 많은 동유럽이었다. 반면 중국 경제가 선전하고 있는 것은 내수의 힘이다. 내수의 뒷받침 없이는 한국경제도 해외 상황에 따라 경제가 급등락하는 불안정한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수출 의존형 경제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8년 기준 46%로 경제규모 상위 20개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물론 수출 중심의 성장전략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변변한 내수기반이 없고 다른 개도국과 달리 부존자원이 부족한 탓에 수출 확대만이 유일한 돌파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2만 달러 고지를 지나 3만 달러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수출만으로는 부족하다. 내수도 동반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9월 정부가 민간소비 증진 등 ‘내수기반 확충 방안’을 발표한 것은 시기적으로 매우 적절해 보인다. 중요한 것은 당장 효과가 나타날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는 것이다. 과거에도 정부는 경기침체기에 카드 활성화 등 인위적 내수부양으로 난관을 돌파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는 가계부실·물가폭등 등 경기부침을 오히려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향후 내수 확대 정책은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면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미 가계신용은 7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가구당 4000만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소비가 늘어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많아 차입가계는 소득의 20%를 원금과 이자 상환에 쓰고 있다. 따라서 가계대출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가격 안정이 매우 중요하다.

또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생활안정 및 소득 저변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득 분포가 불균형할수록 전체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이다. 고소득층의 소비성향이 저소득층의 소비성향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다. 최근 2조원 규모의 미소금융(마이크로 크레디트)이 추진되고 내년 예산에서 복지비 비중이 27%까지 늘어나는 것은 내수 확대에 보약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내수 부문의 성장동력을 육성하는 데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은 제조업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서비스의 질이 낮다 보니 해외에서 소비하려는 유인이 큰 상황이다. 따라서 교육, 의료, 관광·레저, 사회서비스 분야부터 중점적으로 육성 전략을 수립하고 그동안 제조업에 비해 차별적으로 적용됐던 규제나 지원제도 역시 점진적으로 고쳐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내수시장의 저변을 아시아 역내로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내수 위주 성장세가 지속되면서 한·중·일 3국 간 역내 교역 비중은 위기 전에 비해 늘어났다. 이런 점에서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도 더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최근 일본정부가 자국 내수와 아시아 지역 내수 확대를 병행하는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준한 포스코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