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반미 데모하며 미군 붙잡을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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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미 고위당국자가 한국 내 반미감정과 관련,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문정인 대통령직속 동북아시대 위원장은 "주한미군 감축시기가 앞당겨진 것은 돌에 맞아 피 흘리는 미군 헌병 모습이 방송에 나온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얘기를 미국 측 고위관리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크리스토퍼 힐 신임 주한 미 대사도 여야 의원들을 만나 "미국 내 반한감정이 공화당 내 보수파뿐 아니라 민주당에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문 위원장의 발언은 정부 고위당국자로서는 처음으로 주한미군 감축시기에 반미감정이 작용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미군 감축은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일 뿐'이라는 정부의 설명은 허언(虛言)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반미데모가 감축의 촉발제가 된 것이다. 힐 대사의 언급도 새겨들어야 한다. 정부 일각에선 민주당이 미국 대선에서 이기면 미군 감축문제가 재조정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이런 관측에 별 근거가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정부부터 양국 관계의 실상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 미국의 계획대로 내년 말까지 주한미군 감축이 추진될 경우 우리에게 미칠 부담은 엄청나다. 국방비를 대폭 인상할 수밖에 없는 등 그 부담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대통령부터 '반미 좀 하면 어때'라는 식으로 나간 결과가 이런 것이다. 외국군이 자기 땅에 머무는 것을 반가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국익이 그것을 요구한다면 따르는 것이 지도자요, 정부다. '갈 테면 가라'던 정부가 최근에는 감축시기를 연장해 달라고 미국에 요구하니 헷갈린다.

이런 점에서 최근 평택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군기지 이전 반대시위는 매우 우려스럽다. 정부는 이를 슬기롭게 해결해야 한다. 주민 설득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주민들도 이 사업은 지역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현안임을 헤아려 협조할 것은 협조해 주길 바란다. 최근 중국의 역사왜곡에서도 보듯이 미군의 존재는 우리 안보의 핵이다. 우리 손으로 우리의 발등을 찍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