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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경력 제대로 인정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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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필자는 10년 넘게 매년 1000만원을 정부에 헌납하고 있다. 특별히 애국심이 강해 그런 게 아니고, 정부가 월급에서 가져가는 것도 아닌데 월급에서 그만큼 빈다. 대학강사라도 해봤던 이공계 전공자라면 으레 있는 일이다.

기업과 이공계 인력이 중요하다고 목청을 높이는 시대이지만 정부 임시직보다 못한 것이 기업의 정규직이요, 외국 연구소의 연구원이요, 대학강사이다. 정부의 인사 규정상 (임용할 때) 그 경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시정을 요구해도 이 같은 규정은 10년 이상 꿈쩍 않고 있다.

정부는 우수한 이공계 인력을 수혈해 전문성을 높이고 효율을 높이자고 한다. 이게 성공하려면 먼저 이공계 전문인력을 정당하게 대우하고 보상해줘야 한다. 특별한 대우와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만으로도 이공계의 입지가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다.

정부가 이공계 박사 인력 중에서 매년 50여명을 사무관으로 특채한다고 한다. 그러나 특채에 뽑힐 사무관들도 결국 해마다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까지를 정부에 헌납하는 대열에 합류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이공계 학대'가 아니라고 해도 박사 전 경력은 경력에 포함되지 않고, 박사 후 경력도 기업 및 외국연구소 경력과 대학강사 경력은 경력으로 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석사 과정을 마친 뒤 산업.연구 현장에서의 경력은 박사 전 경력이라고 해서 산정하지 않는 규정이 있다. 박사 전은 비전문적인 경력이므로 경력에 포함할 수 없다는 논리다. 반면 대학 조교의 경력은 인정하고, 정부기관의 기능직.임시직 경력도 인정한다.

외국 연구소의 상근직 객원 연구원도 외국에 있는 연구소의 실체를 알 수 없다는 이유를 붙여 인정하지 않는다. 세계화를 내세우고 정보화에 앞선다는 나라가 대사관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되는 사안을 검증하지 않고 있다.

이공계 인력의 전문성을 키우는 데 석사 후 연구 경력은 박사과정만큼 중요하다. 박사과정은 3년을 정해 경력으로 인정하면서 석사과정 후 현장 경력은 모조리 지워낸다. 박사 전 연구와 산업 경력은 아무리 오래되고 무슨 일을 했더라도 박사 전이기 때문에 전문직 경력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정부 논리다. 석.박사가 연계되는데도 석사 경력이 인정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또 군대 경력을 인정하는 것은 병역이 있는 나라에서 당연한데도 병력특례자인 이공계 전문인력의 산업체 근무 경력은 경력에서 제외한다.

이공계 전문 인력은 가련하다. 박사를 마치고도 월 수십만원이나 백만원대의 박봉에 시달리면서 인내하고 노력해 왔지만 결국 정부의 경력 산정법에 따라 피해자가 되고 만다.

행정직에 맞춰 이공계 인력의 경력을 죽이는 일에서 정부가 선두에 섰음을 반성하고 고치지 않는 한 이공계 학대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전문성이 희생되는 건 이공계뿐만이 아닐 것이다. 인문사회 분야와 예체능 분야의 전문 인력도 사정이 다를 게 없다. 우리나라는 행정직을 위한 나라가 아니요, 정부를 위한 나라가 아니다. 국민을 위한 나라다. 국민에게 득이 되는 것은 전문직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게 아니라 정당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김종민 중앙일보 디지털 국회의원
(joongang.co.kr)/assemb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