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 든 의사들, 지역 주민 ‘화음 치료’ 나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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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의 후예들인 의사 10명이 청진기 대신 색소폰을 들었다. 천안·아산에서 각각 병원을 개업하고 있는 이들은 ‘히포 색소폰 앙상블’(이하 히포앙상블)로 뭉쳤다.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연습하는 시간이 어느 때보다 즐거워요.” 매주 월요일 늦은 시간에 모여 색소폰 연습을 한다. 12일 오후 8시 이날도 어김없이 천안 신부동 상가골목 1층의 작은 음악연습실에 모였다. 손에는 모두 색소폰 악기 케이스를 들고서. 멤버들 전공이 내과·정형외과·이비인후과·치과 등으로 다양해 갑자기 종합병원이 차려진듯 했다.

추석연휴로 한 주를 거른 탓인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평상시는 진료 때문에 도통 만나기 어려운 사이다. 모두 모이자 앙상블 지휘를 맡고 있는 윤상운(43·충남교향악단 소속)씨가 자리를 정돈하고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했다.

히포앙상블은 12월 의료 봉사와 위문공연을 앞두고 있다. 그 때를 위해 맹연습 중이다. 요즘 연습곡은 아르헨티나 출신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antaleon Piazzolla)의 ‘리베르탱고(Libertango)’. 강렬한 탱고 음색의 리베르탱고는 강·약의 변화와 빠르고 느린 선율의 반복이 돋보이는 곡이다. 알토색소폰과 테너색소폰, 바리톤색소폰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완벽한 화음을 내야한다.

40~50대 멤버들에게 색소폰은 만만치 않은 악기다. 2시간 가량 좁은 공간에서 연습하다 보면 등줄기에서 땀이 줄줄 흐르고 어떤 땐 어지럽기도하다. 히포앙상블 남인성(53·천안 남인성이비인후과 원장) 단장은 “그래도 목표가 있기 때문에 단원들 모두 즐기면서 연습한다”고 말했다.

그 ‘목표’란 색소폰 연주로 소외된 이웃에게 조그만 즐거움을 줬으면 하는 것이다 . 그 간 이주민을 위한 음악회를 여는가 하면 복지회관 등을 찾아가 위문 공연을 열였다. 이런 연주 활동이 알려지면서 9월 천안웰빙식품엑스포 때는 주최측 초청으로 작은 음악회도 선보였다. 강원도 아리랑과 가요메들리로 행사장 흥을 돋워 큰 갈채를 받았다.

웰빙식품엑스포 초청 공연

히포 앙상블은 재즈 색소포니스트 홍순달(경희대 겸임교수)씨에게 색소폰을 배우던 남인성 단장과 심언철(45·천안 오앤오치과 원장), 최완석(60·천안 한마음정형외과 원장)씨 등이 주축이 돼 2006년 결성됐다. 남 단장은 “천안시의사협회에서 알고 지내던 사이인데 함께 색소폰 연주를 취미로 삼으면서 더욱 밀접한 사이가 됐다”며 “정기적으로 만나 연습하던 중 2007년 시민회관에서 열린 모이세음악회 공연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연주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모이세음악회는 히포앙상블의 첫 번째 외부 공연이었다. 이후 ‘자신감’을 얻어 이주민을 위한 음악회, 의료봉사과 병행한 복지회관 위문공연 등에 나섰다. 남 단장은 “연주회에서 더 좋은 곡을 선보이기 위해 연습에 열중하다보니 자연스레 단원들 연주 실력이 더 좋아지더라”고 했다.

색소폰 연주 경력 15년의 실력파 양희찬(48·천안 우리이비인후과 원장)씨는 “의사는 직업 특성상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라며 “음악활동을 통해 정신적인 안정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는 “혼자가 아닌 10명의 사람들이 화합된 연주를 하다 보니 삶의 태도도 조금씩 유연해졌다”고 했다.

12월 공연을 앞두고 천안 신부동 연습실에 모여 합주 연습중인 히포 색소폰 앙상블. 왼쪽부터 고성규(치과)·남인성(이비인후과)·최완석(정형외과)·도화봉(외과)·권희(정형외과)·김형석(산부인과)·오경환(소아과)·심언철(치과)·이남민(내과)·양희찬(이비인후과)씨. 조영회 기자

의료 봉사와 함께 연주회 병행

‘자신을 낮추고 전체를 살려야 훌륭한 화음이 나온다.’ 멤버들은 음악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사회가 이뤄지길 꿈꾼다. 히포앙상블의 막내 고성규(35·천안 엠티엠치과 원장)씨는 “색소폰 연주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 외에 봉사활동에도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게 히포 앙상블의 장점”이라고 했다.

“아마추어 연주가지만 알찬 공연으로 희망을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은 모두 같다”는 남 단장은 “음악을 사랑하고 기쁜 마음으로 연주하는 우리 음악이 이웃들 마음을 치유하는 역할까지 했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12월 연주회를 앞둔 이들은 지금 레퍼토리 구성과 연습에 총매진하고 있다. 일주일 한 번뿐인 연습으론 부족해 각자 ‘나홀로 연습’을 충실히 하고 있단다. 히포 앙상블 공연에는 동료 의사 3명이 콘트라베이스와 드럼, 피아노로 동참한다. 히포앙상블 봉사의 참뜻에 공감, 색소폰 연주에 다양함을 곁들인다.

조민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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