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도·감청문제 근본해결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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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도대체 정부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국민의 사생활과 통신비밀은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으며 불법 감청과 도청은 없다던 정부 발표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일들이 자꾸 벌어지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이제 도.감청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과 불신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을 지경에 이른 느낌이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검찰과 경찰이 유령예산을 편성해 감청장비를 편법도입한 사실이 밝혀진 데 이어,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불법 최첨단 도청장비를 구입했다는 밀매업자의 진술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나왔다.

또 국방부가 발표한 감청건수는 정통부 집계에 훨씬 못미쳐 축소의혹을 사고 있다. 해양경찰청 국정감사장에서는 야당이 감청장비 공개를 요구하자 여당측이 해경청장에게 비공개를 유도하고 끝내는 표결로 무산시키는 일도 벌어졌다.

이같은 사실은 정부가 도.감청 실태 축소에 급급하면서 한편으로는 도.감청 장비 확보에 열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욱이 국민의 통신비밀을 보호해야 할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불법 도청장비 밀매업자의 고객이 됐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국가정보원은 직원의 개인행위라고 주장하는 모양이지만 그들이 과연 개인적으로 수천만원에 이르는 비싼 장비를 구입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통신제한조치를 엄격히 하겠다는 정부가 무엇이 두려워 감청장비 공개를 꺼리는 것인가.

말 다르고 행위 다른 국가기관의 이중적 태도는 불법 도.감청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설마 했던 일반 시민들까지 검.경뿐 아니라 군.정보원에도 감청과 도청 의혹이 짙음을 보면서 통신비밀 침해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더 이상 말로는 안 통하게 됐다. 단순히 관련법을 정비하고 엄격히 실행하겠다는 약속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대통령조차도 과연 국가기관이 보유한 도.감청 장비가 얼마나 되고, 기관별로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기나 한지 궁금하다.

관련 장관을 질책하고 대국민 홍보를 강조하던 대통령의 말이 원론적인 차원에 머물렀기에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아닌가.

그런 점에서 우리는 뒤늦게나마 감사원이 검찰과 경찰의 도.감청 문제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하겠다고 나선 것을 평가하며, 사태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검.경뿐 아니라 국정원과 군 등 모든 국가기관에 대해서도 실태파악이 이뤄져야 하며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

제도의 정비뿐 아니라 도청과 감청 남용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식의 전환과 의지가 더욱 절실하다. 관련 기관도 한두곳이 아니므로 대통령의 결단으로 더 이상 이런 시비와 의혹이 일지 않도록 획기적이고도 근본적인 개선책이 나오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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