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레슬링] 정지현은 '순둥이 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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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들어 메친 스물한살의 총각은 수줍음 덩어리였다. 목소리가 작았다. 칭찬 섞인 질문이 나오면 금세 얼굴이 붉어지면서 고개를 숙였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0㎏급을 제패한 영웅, 정지현을 인터뷰하기 위해 27일 새벽(한국시간) 팀 코리아 하우스에 모인 기자들은 뭔가 '기사가 될 만한' 답변을 얻기 위해 진땀을 흘렸다. 정지현이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한다"는 짧은 소감을 말하고 입을 닫자 기자들은 '구체적으로 묻고 단답식의 대답'을 들어야 했다.

-엄청난 상금을 받게 됐는데 어디다 쓸 건가요?

"부모님께 드리겠습니다."

-다요?

"조금만 빼고요."

-어디다 쓰려고요?

"도와준 선배들 대접…."

-얼마나 뗄 건데요?

"5만원요. (폭소가 터지자) 아니, 500만원요."

-시상식을 마친 뒤 금메달을 왜 깨물어봤죠?"

"사진기자님들이 시켜서요."

-어떻던가요.

"딱딱해요."

-우승한 다음 오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다고 그랬죠?

"네."

-왜 오기가 생겼죠?

"…."

-대답을 좀….

"저도 잘할 수 있는데 인터뷰도 안 해 주시고…."

-지금도 말을 잘 안 하면서.

"히-(싱긋 웃음)."

-여자친구가 있다면서요?

"예."

-어디 함께 안 가요? 여행 같은 거.

"물어봐서요."

인터뷰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자 마감이 급한 기자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도대체 뭘 쓰나. 그때 누군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정지현이 "올림픽을 3연패하겠다"고 말하자 기자회견장에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어느 기자가 "그랜드슬램을 해야죠?"라고도 물었지만 대답은 단 한마디, "네."

금메달의 위력일까. 순수한 청년이 지닌 매력일까. 답답하고 지루한 인터뷰가 한시간 남짓 계속됐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힘든 일을 마친 듯 땀을 뻘뻘 흘리며 90도로 절을 하고 떠나는 정지현에게 오랫동안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아테네=허진석 기자

*** 아테네 올림픽 특별취재팀
◆스포츠부=허진석 차장, 성백유.정영재.김종문 기자
◆사진부=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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