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평화군유지군 파견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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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인도네시아가 유엔 평화유지군 (PKF) 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동티모르의 비극을 중지시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PKF 파병밖에 없다는 국제사회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풀이된다.

PKF는 인도네시아 군 (軍) 으로부터 모든 권한을 넘겨받아 최장 5년 정도 독립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실질적으로 동티모르를 통치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가 아직 공식적으로 자국 통치지역인 동티모르에 PKF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국권 (國權) 을 일부 정지시키는 치욕이기도 하다.

자카르타 정계 소식통은 "동티모르 사태를 계기로 인도네시아에 민족주의가 대두되고 있다" 며 "이번 결정으로 하비비는 11월에 있을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낙마할 가능성이 커졌다" 고 전망했다.

그러나 PKF 파병은 인도네시아가 화를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특별한 대책 없이 민병대들의 학살을 방치했던 것이다.

인도네시아 군은 지난 20여년간 반독립파 민병대와 함께 동티모르의 독립파 게릴라들을 소탕해온 처지였기 때문에 그들을 상대로 총부리를 겨눌 수는 없었다.

아직 충분히 빠져나오지 못한 인도네시아의 경제위기도 조기에 PKF를 수용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 경제원조 등이 중단될 처지에 빠지는 등 국제사회의 경제적인 압박도 점차 고조돼 왔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향후 48시간 이내에 중대 조치가 있을 것" 이라며 시한까지 못박아 압박을 가했다. 유럽연합도 대 (對) 인도네시아 무기수출을 중지하고 국제통화기금 (IMF) 은 긴급구제금융 지원중단을 시사하며 코너로 몰았다.

유엔도 전방위 압력에 나서 메리 로빈슨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은 PKF 파병이 좌절될 경우 동티모르 주민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할 전범재판소를 열어야 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도 유엔 안보리 50여개국이 참가한 회의에서 "동티모르에 현재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 며 "더 이상 군에 치안을 맡길 수 없다" 고 잘라 말했다.

자카르타 =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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