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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프런트] 저출산 대책이 너무 고마운 ‘880g 희망둥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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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희망둥이의 해맑은 웃음을 지켜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서초보건소 직원 양정애씨, 모유수유전문가 최희진씨, 보건소 김경희씨, 승현이, 승현이 엄마 강경아씨. 880g 미숙아로 태어났던 승현이는 10.3㎏의 튼튼한 아기로 자랐다. 태어난 지 21개월 만에 정상적으로 태어난 또래 아기들과 비슷한 몸무게가 된 것이다. [김성룡 기자]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보건소. 두 살짜리 남자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 들어오자 직원들이 반색 했다. “이게 누구야. 희망둥이 왔네.”

서초동에 사는 이승현군의 별명은 ‘희망둥이’다. 보건소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다. 불임으로 고생하던 부모가 승현이를 갖게 된 것도, 지난해 1월 880g의 초미숙아로 태어난 승현이가 건강을 되찾은 것도 서초구청과 정부가 제공한 혜택 덕분이기 때문이다.

승현이 부모는 5년간 아이가 생기지 않아 심하게 마음 고생을 했다. 그러다 2007년 여름 ‘불임시술 지원’을 통해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 시술비 300만원 중 150만원을 정부에서 낸 것이다. “그땐 승현 아빠 벌이가 한 달에 200만원이 안 돼 시험관 시술은 엄두도 못 냈다”고 엄마 강경아(37)씨는 말했다.

쌍둥이를 임신했다. 하지만 아기들은 6개월 만에 미숙아로 태어났다. 770g으로 태어난 승현이 동생은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났다. 승현이 역시 초미숙아로 생존을 장담하지 못했다. 3개월을 인큐베이터에서 자란 승현이는 지난해 여름에야 퇴원했다. 이때 나온 병원비가 600여만원. 두 번째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비용의 80% 정도인 470여만원을 정부가 지급했다. ‘미숙아 치료비 지원제’ 덕이었다.

승현이가 입원했을 때 가벼운 우울증을 앓은 엄마 강씨를 든든하게 붙잡아준 것도 보건소였다. 세상을 떠난 아기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승현이 때문에 힘들어 하던 강씨에게 3주간 산모 도우미가 찾아와 가사를 도왔다. 매주 한 번씩 들러 모유 수유법을 일러준 최희진(56·아름다운엄마 대표)씨는 ‘친정 엄마’ 같은 존재였다. 승현이는 소화기관이 약해 분유를 먹으면 배에 가스가 차 며칠을 고생했다. 최씨는 강씨에게 “저 작은 아기도 살려고 노력하는데, 엄마가 약한 맘 먹으면 안 된다”며 모유 유축을 도왔다. 강씨는 “모유를 꾸준히 먹이니 아기가 조금씩 살이 붙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초구청의 ‘미숙아 지원팀’은 지속적으로 승현이를 살핀다. 승현이는 매달 한 번씩 보건소를 찾아 발달·영양 상태를 점검받는다. 지난달엔 감기 기운이 있는 승현이를 집으로 찾아와 살펴보기도 했다. 서초보건소 모자보건팀 김경희(42)씨는 “지난해 출범한 미숙아지원팀은 이런 식으로 240여 명의 미숙아를 돌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최근 서초구청장에게 편지를 썼다. ‘이런 도움이 아니었다면 승현이도 하늘나라 천사가 됐을 겁니다. 우리 아이는 서초구가 살려준 희망둥이랍니다.’

승현이처럼 저출산 대책의 도움으로 태어난 ‘희망둥이’들이 늘고 있다. 정부의 임신·출산 지원책이 다양해지고 대상자 폭도 넓어졌기 때문이다. 애를 낳고 싶어도 잘 안 되는 불임부부, 저소득 가정 등에 든든한 원군이다. 정부의 불임 시술비 지원은 2006년 3월 이후 올 상반기까지 5만4900여 건이 이뤄졌다. 이 중 1만7200여 명이 임신에 성공했다.

미숙아 치료비를 지원받은 가정도 지난 10년간 4만2800여 곳에 달한다. 지원 대상이 확대된 2006년 하반기 이후 매년 1만 가구 정도가 이 제도의 혜택을 보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 가족건강과 조경숙 사무관은 “임신·출산 지원책이 저소득층 위주에서 중산층으로 확대되면서 전체 미숙아의 절반 정도가 혜택을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날로 확산되는 저출산 풍조를 생각할 때 지원 폭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불임으로 고생하다 최근 아이를 낳은 이모(32·여)씨는 “불임 고통은 맞벌이 부부 쪽에서 많은데 소득을 합산해 계산하기 때문에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곤 한다”고 말했다. 반향이 좋은 사업이 예산 때문에 쪼그라들기도 한다. 지난해 도입된 ‘보건소 모유 수유 클리닉’은 올 들어 사업비가 절반 가까이 줄면서 시행 보건소도 117곳에서 올해 85곳으로 감소했다.

임미진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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