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비전과 희망으로 노벨평화상 받은 오바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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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호 02면

광대한 우주의 외진 행성, 지구에 60억 개체의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다. 지적 생명체의 존재는 신비하다. 해마다 가을바람 소슬할 때 전해지는 노벨상 수상자 발표엔 지적 생명체 집단으로서 60억 인류를 하나로 묶어 인식하게 하는 미덕이 있다. ▶관계기사 10~11p

2009년에도 염색체 끝부분, 텔로미어에서 인간 노화의 원인을 찾아낸 의학상 수상자 발표(스웨덴 현지시간 5일)를 비롯해 광섬유의 불순물을 제거하면 장거리 광통신이 가능하다는 이론을 확립한 물리학상(6일), 세포 한 개당 1000개에서 100만 개 들어 있다는 극세한 리보솜에 항생제가 흡착되는 원리를 발견한 화학상 수상자(7일)들이 종(種)으로서 인류의 존재를 인식하게 해줬다. 이들 노벨 과학상은 지적 생명체인 인류만이 갈망하는 ‘시간과 공간의 극복’ 문제를 다루고 있다. 노화 방지나 항생제 개발이 시간을 극복하는 문제라면 장거리 광통신은 공간을 극복하는 이슈다. 지적 생명체가 아닌 동식물·광물의 세계에서 시간과 공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노벨 과학상엔 시대와 나라, 종족과 정파를 넘어선 인류 공통의 꿈과 염원이 녹아 있다.

노벨 문학상·평화상·경제학상도 종으로서 인류만의 보편적 가치를 담아내고 있다. 다만 이들 부문에선 시대와 나라, 종족과 정파에 따른 가치관의 차이가 문제가 되곤 한다. 당장 9일 발표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이 그렇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오바마의 비전과 노력을 중시한다. 그는 국제정치에서 상호의존적 외교, 대화와 협상 등으로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오바마만큼 전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국민에게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준 인물도 극히 드물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가장 강력한 반대론은 미국 안에서 나왔다. 월스트리트 저널, 폭스TV, 공화당을 중심으로 나오는 반론은 “비전과 노력, 희망만으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가” “상호 의존, 대화와 협상을 얘기하면서 탈레반과 독재자 카스트로에게 유화 조치를 취하는 게 평화냐. 그들의 폭력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평화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들이다. 노벨상의 공정성 논란은 수상자 선정 과정의 철저한 비밀주의와 1901년 제정 때의 고지식한 선정 기준 때문에 증폭되곤 했다.

그렇다 해도 ‘업적’ 일변도의 노벨상 수상 기준에 ‘꿈과 희망, 비전’이 추가된 것에 이의를 달 필요는 없다고 본다. 꿈과 희망, 비전은 지적 생명체로서, 그리고 종으로서 인류만이 가진 독특한 가치이자 보편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국에서 흑인 출신 대통령이 된 오바마의 역정은 이런 가치와 특성을 체화하고 있다. 말만 번드르르하게 한다고 아무나 노벨 평화상을 받을 수 있느냐는 반론은 오바마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업적을 기준으로 시상했다는 지난 100여 년 수상자 가운데 오바마보다 형편없는 사람이 상당수 있었다는 점도 과거의 수상 기준을 고집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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