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빼돌리고 엿보고 … ‘못된 버릇 못 버린’ 건보공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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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국민건강보험공단 5급 직원 박모(42)씨는 장기요양 서비스를 신청한 노인 130명의 개인 정보를 13차례에 걸쳐 한 요양시설에 유출했다. 노인들의 신체 등급과 연락처 등의 자료를 넘겼다. 자료를 준 데는 장인이 운영하는 노인장기요양기관(재가시설)이다. 장인은 이 자료를 바탕으로 노인들을 대상으로 영업 활동을 해 손님으로 확보했다. 재가시설은 박씨가 근무하는 지사 관할 구역에 있었다. 박씨는 올해 6월 감사에서 적발돼 파면됐다.

어떤 직원은 아예 장기요양 서비스 신청자를 요양시설에 알선하기도 했다. 이 두 사람을 포함해 올 들어 5명의 직원이 요양보험 서비스 신청자의 개인 정보를 유출했다.

건보공단 직원들이 가입자 개인 정보를 유출하거나 불법적으로 열람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건보공단이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과 민주당 전현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53명, 지난해 22명의 직원이 적발돼 징계를 받았다. 올해도 박씨 등 8명이 적발됐다. 지난해 적발된 한 직원은 인기 가수 이효리씨의 가족 사항이나 보험료 현황 등 개인 정보를 열람했다가 적발됐다. 건보공단 측은 “이 직원이 호기심 차원에서 정보를 열람한 것으로 드러나 견책 처분했다”고 밝혔다.

2007년 징계를 받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당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명박·정동영 후보의 개인 정보를 열람한 사람들이다. 특히 이명박 후보의 정보를 열람한 사람이 많았다. 건강보험 가입자뿐 아니라 직원 정보를 본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은 선물을 보내기 위해 동료 직원의 정보를 조회하다 적발됐다.개인 정보를 유출한 건보공단 직원은 1급에서 6급까지 다양했다. 징계 수준은 경징계에 해당하는 견책이 많았다. 심재철 의원은 “건보공단이 개인 정보의 불법 열람 및 외부 유출과 관련해 세부사항을 국회의 자료 요구에도 불구하고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유출한 직원에 대해서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올해 4월 보건복지가족부가 실시한 ‘2008 개인정보보호 실태점검’에서 산하기관 11개 중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7년 대선 후보 개인 정보 불법 열람을 계기로 개인 정보 강화대책을 마련했지만 불법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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