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동북아와 러시아가 손잡을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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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러시아가 아시아 대륙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종종 잊혀지곤 한다. 사실 러시아 영토의 4분의 3은 우랄산맥 동쪽인 아시아 지역에 위치해 있고 대부분의 천연자원도 이곳에 묻혀 있다. 이런 지리적 환경은 러시아가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지역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러시아의 동시베리아 지역에는 아시아의 물 수요를 충당하는 데 도움을 줄 풍부한 수자원이 있다. 물 부족 현상은 아직 경제성장에 장애가 되거나 삶의 질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늘어가는 세계 인구와 기후변화는 향후 수십 년 안에 물의 중요성을 한층 부각시킬 것이다. 동시베리아의 수자원은 한국 등 동북아 국가들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수력 발전에도 이용될 수 있다. 역시 이 지역에 풍부하게 묻힌 석유·가스 등 광물자원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다시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러시아가 가진 이런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투자가 필요하다. 물론 외국인들은 대러 투자를 검토하면서 세계적 경제위기가 러시아 경제에 미친 영향에 주목하고, 기회보다는 리스크가 더 크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세계 경제위기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며 그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국내총생산(GDP)이 10.4%나 떨어졌고, 인플레율은 12%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자율 상승과 실업률 증가, 국내 통화인 루블화 가치의 하락, 외환보유액 감소 등이 러시아 경제를 괴롭히고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도 있다. 이번 위기가 기업들에 비용을 절감하고 소련 붕괴 이후 지지부진했던 구조 개편에 나서도록 부추기는 자극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 부문에서 국가가 물러나고 민간의 역할이 커지는 것도 긍정적인 측면의 하나다. 러시아 경제는 아직 과도기에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년 전만 해도 러시아 경제가 전적으로 국가 통제하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러시아 경제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GDP의 50%를 넘는다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이 비중이 30% 이하로 떨어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10~15년은 더 걸릴 것이다. 회의론이 없진 않지만 나는 앞으로 국가의 비중이 계속 줄어들 것으로 확신한다. 이 같은 추세는 외국 투자자들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할 수 있는 유리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천연자원 공동개발은 유망한 사업이 될 것이다. 러시아 정부도 법률 개정 등을 통해 외국 투자 유치를 적극 지원하려 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유망한 협력 분야는 원자력 개발이다. 원자력의 위험이 그것이 가져다 주는 이익보다 더 강조되던 시기가 지나고 원전이 또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화석 연료가 환경에 미치는 피해와 공급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깨끗하고 안정적인 원전이 매력적인 대안으로 재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전력 생산의 40%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이 같은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일본·러시아 3국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안보라는 이중의 도전에 해결책이 될 원자력 분야에서 더 많은 협력을 할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대규모 원자로 건설에는 거대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러시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값싸고 안전한 신세대 소규모 원자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7년 안에 새로운 원자로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확대는 동북아 지역 국가의 안정적 경제성장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올렉 데리파스카 러시아 베이식 엘리먼트 그룹 회장
정리=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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