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종대왕 동상이 상징하는 소통과 헌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6면

오늘 한글날에 한국 사회는 뜻 깊은 경사(慶事)를 맞이한다. 국가의 중심거리 세종로에 세종대왕 동상이 제막되는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국민의 손(1만원권) 안에 있던 세종대왕이 이제는 국민의 눈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미국 수도 워싱턴의 중심거리엔 거대한 링컨 석상이 있다. 미국인은 링컨상이 의사당을 마주 보면서 미국의 자유 정신과 민주주의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는다. 이제 문(文)의 위인 세종대왕은 무(武)의 영웅 이순신 장군과 쌍벽을 이루면서 한국의 국가 정신을 상징하게 된다. 청와대를 드나드는 대통령들은 동상을 보면서 세종의 리더십과 업적을 불멸의 가르침으로 삼아야 한다. 국민은 위대한 지도자가 이룬 ‘15세기 조선의 기적’을 상기하면서 자부심과 함께 생활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왕조실록 연구가 박현모 교수에 따르면 대왕의 리더십은 소통과 헌신, 인재경영, 창조경영, 감동경영으로 압축된다. 세종의 즉위 첫마디는 “의논하는 정치를 하겠노라”다. 세종은 인재선발, 법과 제도의 혁신, 과학기술 개발, 4군6진의 영토개척 같은 국정 주요 사안을 놓고 신하들과 대화하고 토론했다. 소통이 없었으면 세종의 이런 업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종은 “임금은 백성을 위하여 존재하며, 백성의 하늘은 밥이다. 단 한 명의 백성이라도 하늘처럼 섬기고, 받들어라”고 언명했다.

헌신이 이루어낸 대표적인 업적이 한글 창제다. 한글을 만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억울한 사연을 말과 글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강대국인 명나라와 완고한 유학자들이 반대해도 세종은 백성만을 생각하며 기어코 일을 해내었다. 세종은 친서민 정책의 선구자였다. 천민을 포함해 여든이 넘은 노인을 공경하는 잔치를 벌였고, 강원도에 기근(饑饉)이 발생하자 자신의 자식들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일부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의 실천이었다. 그는 “노비도 하늘이 내린 백성”이라며 100일간의 출산 휴가를 주도록 했다.

올해는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563년이 된다.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훈민정음 28자가 없었더라면 한국이 이처럼 빨리 디지털 강국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글만큼 쉽고 빠르게 키보드를 치고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문자는 드물다.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族)이 한글을 수입해 공식문자로 채택하자 세계는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500여 년 전의 축복이 지금 만개(滿開)하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 자리 잡은 대왕의 동상은 시대의 과제 두 가지를 묵직하게 던져주고 있다. 먼저 지도자들은 국리민복(國利民福)과 부국강병(富國强兵)에 매진했던 ‘소통과 헌신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지도자가 주는 감동이야말로 국민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강력한 자석이다. 국민은 한글 문화를 소중하고 세련되게 가꾸어 나가면서 한글에 담긴 소통과 통합의 정신을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