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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래는 공기업 개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경기회복 등 여건 변화, 노조 반발, 정치적 고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공공부문의 개혁이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대우사태.재벌개혁 등 굵직한 현안이 터지면서 공기업 민영화가 뒷전으로 밀리는 모습이다.

조폐공사 파업유도 파문으로 정부입장이 난처해진 점도 한 이유다.

처음에는 민영화 방안의 일부를 수정하자던 공기업 노동조합들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방안 자체를 거부하는 등 반발강도를 높이고 있다.

기획예산처가 지난해 말 실태점검에 나설 때만 해도 시늉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아예 개혁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발목 잡힌 민영화 = 담배인삼공사의 경우 지난해 8월 경영혁신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정부지분 25%를 국내외 기업에 매각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올들어 증시상장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외국인이든 재벌이든 민간에 일정지분을 매각해 민간의 경영기법을 수혈하고 기업체질을 개선하자는 당초의 민영화 취지가 퇴색한 것이다.

정부는 당초 총 부채가 28조원대인 한전의 경영난을 극복하고 전력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기 위해 발전소를 국내외에 파는 민영화를 서두르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노조와 일부 시민단체는 기간산업인 전력회사를 해외에 팔 경우 전기요금이 급격하게 오르는 등 부작용이 예상되므로 민영화 일정을 늦추자고 주장했다.

이 와중에 올해 안에 1개의 자회사를 팔기로 했음에도 아직까지 발전소 분할계획도 확정하지 못했다.

정부도 최근 은근히 내년 상반기로 매각일정을 연기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박종구 (朴鍾九) 기획예산처 공공관리단장은 "한국종합화학은 지난해 핵심사업 분야인 남해화학을 농협에 매각 (3천억원) 했지만 나머지 사업부문 처리가 지연되면서 현재는 그 매각대금을 야금야금 까먹고 있는 실정" 이라고 밝혔다.

◇ 중단되는 경영혁신 = 한국마사회는 이익금을 농어민자녀장학금과 축산발전기금으로 환원하는 비율을 현행 '이익금의 50% 이하' 에서 80%로 확대키로 정부와 합의하고서도 우물쭈물 넘어가려 하고 있다.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은 경기회복을 이유로 들며 잉여인력 처리를 미루고 있다.

예산처는 공무원사립교원의료보험관리공단과 지역의료보험조합이 합쳐지면서 발생한 잉여인력을 내년 1월 직장의료보험조합까지 합쳐지기 전에 반드시 정리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경우 충분한 기금을 확보했으면서도 정부의 기금적립 중단지침을 거부하고 있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그동안 30억원이 적립돼 일을 하는데 충분한 데도 적자에 허덕이는 지자체로부터 계속 출연을 받는 것은 지자체는 망하더라도 혼자만 살겠다는 행위" 라고 비난했다.

지나치게 많은 퇴직금을 주고 복리후생비를 펑펑 타가는 일부 공기업의 급여체계에 대한 개선도 여전히 미해결 과제다.

기획예산처가 7백5개 정부산하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과다한 퇴직금 누진제를 폐지한 곳은 1백개 정도에 그쳤다.

이런 상황이라면 송유관공사.한국공항공단 등 이미 퇴직금 제도를 고친 곳마저 형평성 문제가 제기돼 거꾸로 돌아갈 수도 있다.

◇ 대책 = 전문가들은 공기업 개혁의 실태와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재점검하고 경영혁신에 대한 체계적인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주선 (李柱善)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기업도 어찌보면 정부기관이라서 제재하기 어렵기 때문에 계획수립보다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 며 "공기업별로 특성에 맞게 경영혁신과 민영화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고 지적했다.

김우진 (金愚珍)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용절감은 공기업 구조조정의 출발점일 뿐 목표가 될 수 없으며 수익성 제고로 연결돼야 한다" 고 강조했다.

고현곤.홍병기.김동호.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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