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험.무적 유령택시 거리 누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 근처에서 개인택시를 탔던 李모 (31.회사원) 씨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다.

30여분 동안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에 가슴을 졸이며 앉아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李씨는 운전기사에게 "운전 좀 살살하면 좋겠다" 고 충고했지만 "왔으면 됐지 뭘…" 이란 퉁명스런 말만 돌아왔다.

참다 못한 李씨가 서울시에 불친절 신고를 했지만 차적에도 없는 유령택시로 밝혀졌다.

李씨는 "사고라도 났다면 보상도 못받고 꼼짝없이 당했을 것" 이라며 "지금도 등골이 오싹하다" 고 말했다.

유령 개인택시가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이들 택시는 개인택시 운전면허증은 물론 차량번호판까지 감쪽같이 위조해 달고 다닌다.

무적 (無籍) 차량이기 때문에 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아 사고가 나면 고스란히 피해자만 손해보게 된다.

중고자동차 매매를 알선하는 金모씨는 "서울시내에만 수백대의 유령택시가 돌아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영업용이나 모범택시 기사와 달리 개인택시는 서로 알고 지내는 경우가 드물어 적발이 쉽지 않다" 고 말했다.

특히 최근엔 위조 번호판까지 만들어주며 유령 개인택시를 시세 (5천만~6천만원) 의 20% 정도인 헐값에 판매하는 전문 브로커까지 등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26일 서울경찰청 수사과에 공기호위조 등 혐의로 구속된 박영규 (朴榮圭.42.경기도 안산시) 씨는 97년 11월 서울 양천구 모 자동차매매상사 李모 (34) 씨로부터 프린스 개인택시를 1천4백50만원에 구입했다.

개인택시 운전면허증과 번호판은 모두 위조된 것이었다.

번호판 위조에는 간판업자가 동원됐다.

훔친 몇 개의 번호판 숫자를 교묘하게 오려 다른 번호판에 정교하게 붙이고 그 위에 페인트칠을 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결과 개인택시로 둔갑시킬 차량을 조달하는 사람과 번호판 및 면허증을 위조하는 사람, 이를 판매하는 사람 등으로 나뉘어 있는 등 전문적인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 고 말했다.

朴씨는 경찰에서 "내가 택시를 살 당시 다른 2명도 택시를 사갔다" 고 진술했다.

경찰은 서울시내에만 2백여대의 유령 개인택시가 영업중이란 첩보를 입수, 전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매매알선책 李씨 등 3명을 수배하는 한편 관련 공무원의 묵인없이는 이같은 위조 유령차량이 운행될 수 없다고 보고 공무원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김기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