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비평' 가을호 '우리안의 파시즘' 특집 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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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오늘 우리의 일상에 파시즘은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살아 있는가.

일본의 기미가요.히노마루 법제화를 거세게 비판하고 있는 우리는 과연 파시즘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18일 출간된 계간 '당대비평' 가을호 (삼인.1만원)가 특집 '우리안의 파시즘' 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도전적 지적을 하고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한양대 사학과 임지현 교수의 '일상적 파시즘의 코드 읽기' 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인 박거용 상명여대 영어교육과 교수의 '군사파시즘의 잔재와 교육' 은 우리의 일상 안에서 흔히 발견되는 파시즘의 요소와 그 근원을 분석하고 있다.

임교수는 우리 안의 파시즘적 요소를 들춰내기 위해 먼저 "지난 2월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군대식 대열로 운동장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 애국가 제창 등의 국민의례로 이어진" 초등학교 졸업식 풍경을 묘사한다.

개인의 개성을 육성해야 할 민주교육의 현장인 초등학생 집단에서 개인은 찾을 수 없고 유일하게 '국가권력' 만이 살아 춤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침마다 교문 앞에서 학생들의 용모검사를 하는 주번제도 역시 일제 식민지 교육의 잔재라는 주장이 이어진다.

임교수의 관찰은 대학가의 록컨서트로 넘어간다.

윤도현밴드와 랩송 가수 김진표의 노래의 메시지는 "충분히 반항적.전복적" 이지만, 관중에게 멤버를 소개하는 태도는 '우리 형님, 선배' 운운하며 복종적이라고 지적한다.

파시즘적 조직규율이 몸에 밴 증거라는 것. 임교수의 눈길이 닿은 모든 일상에는 파시즘의 잔재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하찮지만 견고한" 일상에 남아있는 파시즘의 근원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임교수는 '천황에 대한 충성' 을 '조국에 대한 충성' 으로 대체한 "해방후 교육의 역사는 학생 길들이기의 역사였다" 며 우리 교육에서 그 근원을 찾고 있다.

박거용 교수 또한 "일제의 청산되지 않은 군국주의적 잔재 위에 덧씌워진 미군정의 대미 종속적 교육정책의 전면화" 로부터 우리 일상의 파시즘은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박교수는 특히 68년 선포된 뒤 25년간 정권의 이데올로기로 이용됐던 국민교육헌장의 이념적 허구를 분석, 교육 안의 파시즘적 요소를 조목조목 짚어낸다.

박교수는 교육계에서 발견되는 파시즘 잔재의 구체적 형태로 대학교재에 대한 사상적 간섭과 국정교과서를 '전체주의 이데올로기 주입작업' 이라고 규정하는 것을 비롯, 교수재임용제도.교육발전5개년계획의 파쇼성을 분석했다.

지난 2월 이해찬 전 교육부장관의 '대학신입생에게 보내는 글' 에 나타난 파시즘도 비판했다.

진정한 변혁을 위해서 "민중의 이름으로 일상적 파시즘을 고사" 시켜야 한다는 주장 (임교수) 과 "학교간 민주화 경쟁의 강화 혹은 그 기반을 구축" 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결론 (박교수) 은 주목할 만하다.

고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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