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옐친 언론사 세무사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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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가두마 (하원) 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러시아 크렘린은 반대파 언론에 대한 대대적 탄압을 진행 중이다.

주요 수단은 세무사찰. 언론자유가 그 나라 민주화의 척도라는 점에서 볼 때 러시아의 민주화는 아직 요원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셈이다.

◇ 세무사찰 = 크렘린은 지난달 초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그룹 미디어 - 모스트 (회장 미하일 구신스키)에 대해 갑작스럽게 세무사찰을 벌이기 시작했다.

러시아 3대 방송사의 하나인 N - TV 등 미디어 - 모스트 그룹 소속 언론사들이 크렘린 왕당파는 물론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막내딸 타티야나 디야첸코에 대한 폭로성 보도를 진행하거나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직후였다.

러시아 국책은행은 이 그룹의 대출금 6천만달러에 대해 이례적으로 상환을 요구, 예금차압소송에서 승소판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크렘린의 언론장관은 "정부에 대한 언론의 영향력이 언론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보다 훨씬 크다" 며 노골적으로 언론 길들이기의 의지를 밝히고 나섰다.

그래서 옐친의 의사와 상관없이 크렘린 왕당파들이 스스로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 반대파 언론사를 짓누르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문제의 언론사들은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세무조사는 명백한 언론탄압" 이라며 격렬하게 비난했다.

정부관련 보도의 비판수위도 더욱 높이며 맞서고 있다.

그러나 크렘린은 아직 최종 세무조사 결과를 밝히지 않고 있다.

◇ 친여 언론 동원 = 미디어 - 모스트는 반 (反) 옐친의 선봉인 유리 루슈코프 (모스크바 시장) 계다.

크렘린은 측근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계 언론사들을 통해 모스크바시의 부적절한 예산집행, 루슈코프 부인 회사와 모스크바시의 유착 등에 대해 폭로하는 한편 이 그룹의 자금줄을 죄는 갖가지 수단들을 동원했다.

미디어 - 모스트 그룹의 파산설도 흘리고 있다.

러시아의 각 정치세력은 크렘린을 포함해 모두 언론.재계와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옛소련의 해체과정에서 국영언론.기업들을 불하받은 러시아의 신형귀족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정치세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그 대가로 정치세력의 '입' 이 돼 주기도 한다.

크렘린이 주요 정치일정을 앞두고 필사적으로 언론을 장악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러시아에서 현재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신문들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온 코메르상트 데일리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그리고 이즈베스티야 등이다.

따라서 크렘린은 반 옐친계 언론사를 공격하는 한편 친 옐친의 베레조프스키를 동원해 코메르상트 데일리를 사들인 것으로 것으로 전해졌다.

프리마코프 전총리의 루슈코프 진영 가담으로 정부의 언론탄압에 대한 반발 강도가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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