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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이 경쟁력이다] 전주 한옥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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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소재 전주 한옥생활체험관에서 초등학생들이 대청마루에 올라 옛 선비들의 예절에 대해 강의를 듣고 있다. 전주=양광삼 기자

25일 오전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전통문화센터. 30~40대 중국인 남녀 100여명이 한복에 사모관대와 원삼.족두리를 걸치고 초례상 앞에서 맞절을 하는 등 우리 전통 혼례식을 재연하며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굿거리 장단에 맞춰 장구.징.꽹과리.북 등을 두드리며 어깨를 들썩거리기도 했다.

마홍메이(35.여.윈난성 청년연합회 부주석)씨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해 보니 이색적인 멋이 느껴진다"며 "가족과 다시 한번 오고 싶다"고 말했다.

슬럼가로 방치되던 전주의 한옥마을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한해 외국인 4만5000여명을 포함해 60여만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다녀갔다.

작년 관광객 60여만명

◆ 슬럼가에서 관광명소로=전주 한옥마을은 1930년대 부자와 관리들이 이곳에 몰리면서 형성됐다. 전북도는 사료적 가치가 큰 전통 기와집을 보존하기 위해 77년 한옥 보존지구로 지정, 기와집 외에는 건물을 짓거나 개조할 수 없도록 규제했다. 그러다 보니 지붕이 새고 기둥.벽 등이 낡아 흉물이 돼도 손을 못 대 급속하게 슬럼화했다.

한옥 보존지구 해제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민원과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명분 사이에서 고민하던 전주시는 99년 전통문화특구로 지정, 한옥 신.증축은 최고 5000만원, 문화시설 건립에는 2000만원 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내걸었다. 또 250억원을 들여 골목길을 넓히고 전통문화센터.술박물관.한옥생활체험관 등을 지었다. 영세민촌 같았던 곳이 깔끔하고 볼거리가 많은 명소로 탈바꿈했다. 그러자 관광객이 몰려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 지역경제에 효자=지역경제 파급 효과도 크다. 전주를 그냥 스쳐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한옥마을에 머무르고 체류하면서 돈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 외래관광객은 외국인 6만여명, 내국인 60여만명으로 잡고 있다. 시는 이들이 1박2일 체류할 경우 외국인은 1인당 200달러, 내국인은 6만원 정도를 쓰게 돼 올 한해에만 500억원이 지역에 뿌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09년께 한옥마을 조성사업이 마무리되면 주변 문화시설과 음식점.찻집 등에 3000여명에 이르는 고용 창출도 예상된다. 장기적으로는 김치축제 등을 열어 전통식품 산업화와도 연계할 방침이다.

김완주 전주시장은 "낙후지역 개발과 관광수익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았다"고 말했다.

기와집 700여채 빼곡

◆ 맛.멋이 흐르는 전통여행=한옥마을에 들어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1900년대 중반의 모습을 간직한 기와집 700여채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기와집들 사이로 난 골목길을 걷노라면 한옥의 부드러운 추녀와 나지막한 담, 그 안의 장독대 등이 정겨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널뛰기.투호 등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는 마당이 차려져 있고, 곳곳에서 우리 소리 가락이 흘러 나와 운치를 더해 준다.

경기전.향교 등 볼거리

이곳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보관한 경기전과 선비들이 글을 익히고 학문을 논하던 향교, 100년이 넘은 전동성당 등 문화 유적이 많다. 게다가 조상의 생활문화를 엿보고 만지고 듣고 즐길 수 있는 체험시설이 많다. 전주천 옆 전통문화센터는 '한벽당'의 경우 사시사철 명인.명창들의 판소리와 춤.기악.풍물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전문 강사와 함께 콩나물.호박.도라지 등 20여 가지의 재료를 볶아 비빔밥을 만들어 보는 조리실과 전통 혼례청.다례 체험실도 있다.

정성룡(43.경기도 수원시 율전동)씨는 "온돌에서 잠잔 뒤 5첩 반상(숙채.생채.구이.찜.젓갈)의 아침 밥상을 받으니 마치 조선시대 선비가 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dsjang@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2330@joongang.co.kr>

*** 전문가가 본 성공 포인트

맛 + 멋 내세워 관광시장 공략 적중

전주 한옥마을 사례는 지역마케팅 전략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역마케팅이란 지역을 하나의 상품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이미지와 시설을 갖춰 더 많은 관광객과 기업이 찾도록 지역의 상품가치를 높이는 전략이다.

지역마케팅으로 침체한 도시를 회생시킨 사례는 많다. 철강도시.공해도시에서 첨단 하이테크 도시로 변신한 미국의 피츠버그, 폐광도시에서 문화도시로 변모한 영국 에든버러가 좋은 예다. 지역을 좀더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고 알린 덕분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차별화된 이미지 전략이다. 찾는 장소마다 취급하는 제품이 비슷하고 분위기 또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전주는 차별화의 포인트를 '전통문화'로 설정하고, 대표 상품으로 '한옥마을 체험'을 내세웠다.

한옥마을이라는 그릇에 전주의 멋과 맛이 소프트웨어로 어우러지면서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다. 전통문화와 체험에 관심 있는 관광시장을 집중 공략한 전략이 주효했다.

열정과 역발상 아이디어를 가진 공무원과 주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행정이 일방적으로 주도하지 않고 교육과 사업 기회를 통해 시민 참여 분위기를 북돋움으로써 시민들을 주역으로 내세운 점도 성공요인이다.

강신겸 (삼성경제硏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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