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장보고 둘러싼 도자기 논쟁] 고려청자일까, 신라청자일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고려청자를 탄생시킨 인물이 장보고다.”

전남 강진군 일대의 청자 도요지에서 수년 동안 현지조사를 한 일본 고고학자 요시오카 간스케(작고)의 주장이다. 강진은 장보고가 활발한 해상교역을 하던 당시 도자기 생산기지로 발전했고, 이곳에서 장보고의 후원으로 해무리굽 청자를 만들어 일본까지 수출했다는 것이다. 해무리굽 형식은 학계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초기 고려청자의 특징이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장보고가 해상 교역로를 통해 해무리굽 형태를 띤 중국의 웨저우요 도자기 생산 기술을 들여옴으로써 고려청자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최건 경기도자박물관장 역시 장보고가 활동하던 9세기를 고려청자의 탄생 시기로 보고 있다.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 등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의 가마터는 이런 주장을 더욱 뒷받침해 준다.

일부 학자는 신라 말기에 고려청자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든든한 자기 생산 후원자였던 장보고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고려청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반론도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려청자로 인정받는 ‘순화4년명호’ 항아리(이화여대 소장) 때문이다. 제작 연대(993년)와 만든 사람, 사용처가 명확하게 드러난 이 자기를 근거로 명지대 윤용이(미술사학) 교수는 고려청자가 10세기 이후에 탄생했다고 반박한다. 1989년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에서 발굴한 황해도 봉천군 원산리 가마 출토의 ‘청자 순화3년명 굽 높은 잔’ 역시 비슷한 시기로 측정됐다.

특별취재팀 ▶ 팀장=김시래 산업경제데스크 ▶취재=김문경 숭실대(역사학) 명예교수, 천인봉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사무총장, 김창규·염태정·이승녕·문병주·강병철 기자 ▶사진=안성식·오종택·변선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