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86.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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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제10장 대박

묵호댁은 그때 막 잠자리에서 깨어나던 참이었다. 해장국을 끓여 팔자면, 속이 출출한 어부들이 몰려들기 한 시간 전에는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문을 열어 준 식당으로 들어서면서 변씨는 힐끗 벽시계를 보았다.

벌써 새벽 4시를 지나고 있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한 것 같은 변씨를 곱지 않은 눈길로 흘기던 묵호댁의 입에서 외마디 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그때였다. 변씨의 왼쪽 바짓가랑이를 훌쩍 치켜들었다.

그러나 지린내 아닌 비린내가 물씬 콧등을 스쳤다. 묵호댁이 자지러지며 울부짖었다. 변씨가 가로막을 사이도 없이 외마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게 웬 날벼락이에요?" 자신이 상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변씨도 그때서야 깨달았고 가슴이 뜨끔했다. 식당까지 도착하는 동안 자꾸만 앉거나 누워 버리고 싶었던 것은 상해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비로소 눈앞이 아득했다. 안색이 종잇장처럼 질린 변씨를 곁부축해서 방에다 눕혔다. 서둘러 바지를 벗기고 허둥지둥 장딴지에 흐르는 피를 훔쳐냈다. 장딴지 아래쪽에 드러난 상처는 허연 속살이 드러날 정도로 깊었다. 칼부림으로 입은 상처가 분명했다.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자는 묵호댁을 위협하고 달래 허리띠를 풀어 허벅지를 바싹 조였다. 고통이 명치 끝까지 치밀어올랐다. 수건을 헹군 세숫대야의 물이 금세 검붉게 변하고 말았다. 땀을 뻘뻘 흘리던 묵호댁이 겨우 입을 열었다.

"도대체 한밤중에 어디서 이런 낭패를 당하였소?" "어디서 찔렸다는 것을 알았다면 병원 신세를 졌지. 여기로 달려왔을까. " "대꾸하는 걸 보니까, 정신은 말짱한 모양이요. " "이깐 일로 정신까지 팔아먹을까. " "휘청거리고 들어서길래 밤새껏 퍼마시다가 해장술 하러 온 줄 알았소. "

"하긴 맨숭맨숭한 건 아니지. " "참말로 병원 가지 않아도 되겠소? 난 가슴이 뛰어서 정신을 못차리겠네. " "날 새거든 가게 가서 양주 한 병 사와요. 소독약 사겠다고 약국 근방에는 얼씬도 말고. " "말하는 걸 보니까, 차마담하고 칼부림을 벌였나 보네요. "

"쓸데없는 소리 그만두고, 나 여기 있다는 사실 아무도 모르게 해요. " "차마담 찾아올 데가 여기뿐인데?" "말 시키지 말아요. 나 죽겠네. " 방파제에서 마셨던 술기운으로 한동안 통증을 비켜갈 수 있었지만, 정신이 맑아지면서 장딴지뿐만 아니라, 하반신 전체가 저리고 욱신거렸다. 오한이 들기 전에 상처를 소독해야 하겠기에 묵호댁에게 먹다 남은 양주병을 찾아 보라고 채근했다.

묵호댁은 마침 조리대의 찬장에서 양주병을 찾아냈다. 온 삭신이 옥죄고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제 손으로 상처에 술을 부었다. 혼백이 공중에 떠버린 묵호댁은 시종 벌벌 떨고 바라보면서도 방에서 떠나지는 않았다.

만약 묵호댁이 없었다면 지금쯤 자기는 어느 길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을까.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채근에 못 이겨 쫓기듯 술청으로 나간 묵호댁의 허둥대고 있는 거동이 희미하게 잡혀 왔다. 팔꿈치로 기어가서 문을 열었다.

대야의 물을 싱크대의 하수구로 흘려 보내고 있는 묵호댁의 뒷모습이 어렴풋이 바라보였다. 육허기를 채우기 위해 사내만 뒤쫓았던 묵호댁 아닌 전혀 다른 모습의 여자가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그녀는 변씨의 시선을 알아챈 듯 돌아보지도 않고 쏘아붙였다.

"엉뚱한 생각 없으니 끽 소리 없이 누워 있기나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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