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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이 전하는 추석 민심] “서민·지방 경기 살려라” 한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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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추석은 민심의 용광로로 불린다. 고향을 찾아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교감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전국적 바닥 민심’이란 게 형성되기도 한다. 의원들이 마주한 현실은 어떠했을까. 여야 의원 4명이 느낀 추석 민심을 중계한다.

강원권 한나라 이계진

시장을 찾은 내게 사람들은 우호적인 분위기였다. 그러나 사정이 나아지거나 좋아져서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그들은 여전히 장사가 잘 안 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가감 없이 한마디씩 했다.

대형마트의 매기(買氣)를 임원에게 물었더니 지난해만 못하다는 대답이었다. 대도시 백화점에선 초고가 선물이 잘 팔린다는 뉴스와 달리 마트에서는 1만∼3만원대 저가의 선물이 주로 나간다고 했다. 지역과 계층 간에 실제 느끼는 경기엔 차이가 있음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전통시장을 찾았다. 나물을 파는 70대 노점상 할머니는 “놀다가 가는 셈 치고 앉아 있다”고 말했다. 70대 쌀가게 할아버지는 “장날이 아니면 보통 때는 매기가 너무 없다”고 했다. 그러곤 덧붙였다. “정치하는 사람들, 제발 쌈질이나 하지 말라고 그래요. 사사건건 싸우는 모습은 정말 보기 싫어.” 그러고 보니 시장에 들어서기 전에 만난 할아버지가 “정치하는 분들, 고민이 많겠지만 그건 알아서 잘하고 경제나 잘 되도록 해 달라”고 한 말씀이 떠올랐다. 난 “명심하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요즘 대통령이 열심히 하는 것 같아 서민들이 기대가 큰데 제발 잘살게 해 달라는 부탁도 많았다.

좋아진다는 경제, 과연 아랫목에서 느끼기 시작한 온기를 윗목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쯤 체감할 것인가. 혹 온기를 느끼기 전에 부동산 과열이다 뭐다 해서 불 때기를 중단하는 것은 아닐지. ‘한가위만 하여라’는 옛말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충청권 선진당 김창수

“희망근로사업으로 뿌린 상품권을 대형 마트에서도 쓰게 하니까 그마저도 재래시장으로 오질 않아.”

1일 오후 신탄진시장에서 만난 상인 이모(54)씨는 악수한 손을 놓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재래시장은 명절 때 단체장이나 기관장들이 한번씩 의례적으로 다녀가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정부는 각종 경제지표가 좋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아직 싸늘했다. 대전의 대표적 도매시장인 오정동 농수산시장 상인들은 올해 말부터 시작하는 시장 현대화사업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 한 상인은 “서울도매시장하고 똑같은 비율로 지자체에 부담을 하라고 한다면 몇 년 못 가 또 바꿔야 할텐디…, 그때 가서 또 어쩌려는지 모르겄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종시 문제에 언성을 높이는 사람도 많았다. 법동의 한 노인정에서 만난 어르신은 “정운찬씨가 원래대로 하기 어렵다고 해서 난리들이 났는디. 자유선진당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여. 뭘 좀 똑부러지게 해봐”라며 호통을 쳤다. 심대평 전 대표의 탈당도 주민들에겐 불편한 소식이었다. 부동산중개인은 “지금 충청권이 힘을 합해도 부족한 판에 심 대표가 당을 나가버리면 주민들이 엄청 헷갈릴텐디…”라고 걱정하며 되레 내게 “교섭단체도 안 돼서 어렵다면서요?”라고 되물었다. 한 유권자는 내년 지방선거를 거론하며 “선거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 대책은 뭐 있슈”라고 물었다. 나는 허리를 더 굽혀 “아이고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영남권 한나라 조해진

지역구에 도착했을 때 새마을부녀회와 향토청년회가 지역특산물과 인절미·송편에 대추차까지 끓여서 귀성객을 맞고 있었다. 도회지보다 형편은 어렵지만 고향은 늘 넉넉한 인심으로 우리를 반긴다.

다 합쳐 1만원도 안 되는 채소·나물을 펴놓고 쪼그리고 앉은 장터 할머니의 모습에 가슴이 저려 온다. 어물전 아주머니는 “임기 중에 시장을 위해 뭔가 확실히 안 해놓으면 표 얻을 생각 말라”며 정색을 한다. 전통 재래시장 활성화는 상인들뿐만 아니라 지역경제의 숙원사업이다.

친구는 지역에서 조그만 건설업을 하다 일감이 없어 구직 대열에 나섰는데 2·3차 산업이 빈약한 지역 현실에 막막하기만 하다고 한다. 친척집에 가니 취업 예비군인 동생, 재취업 훈련 중인 동생들 모두 일자리 구하기에 아우성이었다.

농민들은 추곡가 하락을 걱정했다. 우리나라 경제가 웬만큼 돌아가도 지역은, 농민은 늘 뒷전인 듯하다. “경제가 어려울 때 서민들이 가장 먼저 고통받고, 경제가 좋아져도 서민들은 맨 나중에야 기별이 간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걱정은 현실을 그대로 적시한 것일 수 있다. ‘서민 먼저, 지역 먼저’란 정부의 방침은 그런 의미에서 옳다고 느꼈다.

그나마 올 명절엔 예년처럼 거북살스러운 이야기를 덜 들었다. 국정이 안정되고 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회복돼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아직은 피부에까지 와닿고 있지 않지만 경제와 미래에 대해 낙관과 기대가 번져 가는 분위기였다.

호남권 민주당 강기정

“기사들 봉급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는 계십니까.”

지난 2일 새벽 5시 무렵 찾은 광주 장등동 버스 종점에서 만난 한 버스기사의 핀잔이다. 쉽게 대답을 못하자 “새벽 인사도 좋지만 그 정도는 알고 다녀야지요”라며 가시 섞인 한마디가 덧붙었다. 그는 “한 달에 22일 만근에 167만원 받소. 이래가지고 대학교(학생) 하나 가르치겠소?”라며 고개를 돌렸다. 시내버스공영제 도입 이후 인기 직장이 됐다는 버스 기사들의 현주소였다. 소득 양극화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되느냐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재래시장 분위기는 추석 대목이 무색했다. 1일 오후에 찾은 말바우 시장에 있는 한 생선가게에 들렀다. “갈치 좀 삽시다”라는 인사말에 주인 윤덕섭(52)씨는 대뜸 “왜 우리 쪽 음식물 쓰레기는 안 가져 간다요”라며 싫은 소리를 내뱉었다. 쓰레기 수거 문제는 재래시장 상인들의 해묵은 민원이다. 장사가 안돼 잔뜩 예민해진 상인들의 심사가 느껴졌다. 시장에선 꼭 물건을 사야 한다. ‘잘 되느냐’고 인사만 건네면 반드시 “물건도 안 살 거면서 쓰잘 데 없이 돌아다닌다”는 말이 되돌아온다.

소수 야당을 향한 걱정도 많았다. “인사청문회서 문제가 있어도 그대로 임명들 하드만”(김재건씨), “자꾸 밀리는 것 같습디다. 잘 좀 하시오”(김영택씨) 등이다. 그때마다 “숫자가 부족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했다. 그나마 “100석은 돼야 한나라당을 견제하지”(이문섭씨)라는 말에서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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