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인터넷 도메인명들 외국인이 대부분 점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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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회사원 閔모 (31) 씨는 29일 여름휴가를 앞두고 인터넷에서 제주도 관련 정보를 찾아보려다 충격을 받았다.

가장 흔한 도메인 (Domain.인터넷 주소) 형식대로 'www.cheju.com' 을 입력하자 모니터에 제주와는 전혀 무관한 사이트가 뜬 것이다.

'아시안시티 웹' 이라는 무료 E메일 사이트로 미국 휴스턴의 W사가 운영하는 것이었다.

황당해진 閔씨는 부산 (pusan).인천 (inchon).대구 (taegu).광주 (kwangju) 등 다른 도시들도 같은 방식으로 검색해봤다. 마찬가지로 모두 외국회사 소유였다.

'제4의 영토' 로 불리는 인터넷. 그곳에서 우리 것들이 외국인들에 의해 무차별 점령당하고 있다.

주요 대도시는 물론 유명 거리나 문화상품 등의 이름 뒤에 'com' 'org' 등이 붙는 인터넷 주소들이 이방인들에 의해 마구 선점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도메인 외침 (外侵) 사태는 '머잖아 한국인들에 의해 주요 명소나 명물들을 소개하기 위한 인터넷 홈페이지가 개설될 것' 이란 계산아래 이뤄지고 있다.

유력한 대상들을 미리 차지해두면 고가 (高價)에 팔 수 있다는 발빠른 장삿속이다.

도메인 선점은 주로 미국.일본 등 소위 인터넷 선진국 사람들에 의해 이뤄진다. 대상은 한국을 포함, 아직 인터넷을 통한 홍보가 덜 대중화된 지역이다.

이른바 '도메인 사냥꾼' 또는 '스쿼터 (불법 점거자)' 로 불리는 이들은 'com' 'net' 'org' 등 유명 도메인을 관리하는 미국 인터닉 (interNIC) 을 통해 원하는 도메인을 먼저 등록만 하면 어떤 이름이든 최초등록자의 소유가 된다는 점을 악용한다.

이들에 의해 우리의 대표적 먹거리이자 자랑거리인 김치 (kimchi) 와 갈비 (galbi).태권도 (taekwondo) 도 일찌감치 빼앗긴 상태.

국내에서 개인이든 기업이든 기관이든 선점당한 도메인을 가지려면 큰 돈을 주고 외국인으로부터 사오거나 변형된 다른 이름으로 등록해야 할 형편이 돼버린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같은 상황파악은 물론 도메인에 대한 인식조차 미미한 실정이다. 국내에서의 도메인 분쟁해결을 위해 지난 2월에야 학계와 정부관계자들이 참가한 도메인분쟁협의회가 겨우 발족됐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정부기관이 됐든 민간이 됐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우리 것들이 외국인에게 선점됐는지' 에 대한 실태파악부터 필요하다고 말한다.

"철저한 조사에 이어 해당 도메인의 소유자가 단순히 금전적 이익만을 목적으로 이를 소유 중이라면 국제기구에의 제소 등 강력한 대처를 하지 않으면 결국 커다란 국가적 손실을 보게 된다" 는 게 서울대 홍준형 교수 (행정학) 의 지적이다.

기획취재팀 = 김석현.신동재.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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