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증후군엔 맞춤식 호르몬 요법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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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호 15면

식생활이 서구화되고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초경 연령은 상당히 당겨졌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는 생리하는 여학생들이 적지 않다. 반면, 난소 기능이 상실돼 월경이 영구히 없어지는 폐경 시기는 일정한 편이다. 평균 50세를 중심으로 5~10년 사이에 대부분 폐경을 겪는다.

원장원의 알기 쉬운 의학 이야기

사실 ‘폐경(閉經)’이란 용어는 왠지 폐품(廢品)처럼 쓸모없어진 것을 의미하는 느낌을 준다고 해서 ‘가임기 업무를 잘 완수하였다’는 뜻의 ‘완경(完經)’으로 바꿔 부르자는 주장도 있다. ‘갱년기’로도 불리는 이 시기엔 사춘기에 버금갈 만큼 여러 가지 증상과 신체 변화가 나타난다. 그중 가장 흔한 증상은 안면홍조다. 폐경이 된 여성의 30~80%에서 나타난다. 일부 여성들에겐 폐경이 되기 전부터 안면홍조가 발생하기도 한다. 안면홍조란 수분간 상체와 얼굴에 강한 열감이 지속되다가 갑자기 땀이 나고 오한을 느끼며 간혹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는 증상을 말한다. 특히 밤에 더 심하고 빈번하다. 증상이 심한 여성들은 선선한 날씨에도 덥다고 창문을 자주 벌컥벌컥 열어젖혀서 남편과 다툼을 일으키게 한다. 일단 안면홍조가 나타난 여성은 80%가 1년 이상 증상을 보이지만, 대부분 수년 내에 치료하지 않고도 저절로 사라진다. 그러나 일부 여성에서는 그 증상이 오래 지속돼 50대 여성의 약 15%에서, 그리고 70세 이후에도 약 9%에서 안면홍조가 나타난다.

또 폐경기엔 여성호르몬 부족으로 인해 질벽이 얇아지고, 질의 탄력이 떨어지고 좁아지며 건조해지기 때문에 성교 시 통증이 생기고 가려움이나 출혈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런데 성관계를 유지하면 여성호르몬을 특별히 보충하지 않아도 질의 크기와 모양의 변화를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고 하니, 사랑은 노화 현상도 늦출 수 있는가 보다. 또한 요도 점막이 얇아지면서 요도가 잘 손상을 받아 요도염이 흔히 발생한다. 요도 괄약근 부위도 잘 닫혀지지 못해 요실금이 생기기 쉽고, 방광 점막이 얇아지면서 예민해져서 소변을 자주 보게 된다.

피부는 콜라겐 감소로 피부주름이 증가한다. 심리적으로는 예민해지며 감정의 변화가 심하게 된다.

폐경으로 인한 또 다른 큰 변화는 혈중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증가하면서 심근경색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과, 뼈의 칼슘이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골다공증이 빠른 속도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폐경 전 여성은 동일 연령의 남성에 비해 심근경색의 발생 빈도가 10분의 1 정도로 현저히 낮으나, 폐경이 되면 위험도가 증가해 70~80대에는 남성과 거의 비슷한 빈도로 심근경색이 발생하게 된다. 그 외에도 폐경이 되면 관절이나 근육 통증, 수면장애도 흔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갱년기 증후군에는 호르몬요법이 매우 도움이 된다. 여성호르몬을 보충해주면 안면홍조를 완화시키고, 비뇨생식기와 피부의 위축을 예방하며, 골다공증을 예방해 골절의 빈도를 감소시킨다. 여성호르몬은 또한 피부의 콜라겐 감소를 줄여줘 주름이 적게 생기게 한다. 그뿐 아니라 호르몬요법은 관절의 통증이나 뻣뻣함·전신통 등을 완화시키고, 정서불안·수면장애를 호전시켜주며, 콜레스테롤 저하에도 효과적이다.

초기엔 호르몬요법이 관상동맥질환의 발생도 예방하고 치매도 예방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한동안 여성호르몬이 폐경 후 여성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취급되기도 했다. 그런데 2002년 미국국립보건원이 여성건강연구(WHI) 결과를 통해 여성호르몬이 유방암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당시의 기대와 달리 관상동맥질환이나 뇌졸중의 위험을 증가시키고 정맥의 혈전증을 증가시킨다고 발표하면서 여성호르몬제는 하루아침에 위험한 약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후 발표된 추가 연구 결과를 보면 유방암의 발생 위험은 여성호르몬제를 복용하기 시작한 후 4년째까지는 증가하지 않고 5년 이상 복용한 경우에 증가한다. 또 관상동맥질환의 발생 위험도 이미 관상동맥질환이 있는 여성이 여성호르몬제를 복용한 경우나 60세 이후에 여성호르몬제를 복용하기 시작한 경우에 증가한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요즘엔 여성호르몬제를 60세 이전에 시작해서 5년 이내로 사용하는 것은 크게 위험을 증가시키지 않으면서 여러 폐경기 증상을 완화시키고 골다공증에 의한 골절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가능한 한 저용량으로 최소한의 기간 동안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긴 하지만, 의료진이 갱년기 증후군의 심한 정도나 환자의 나이, 심혈관 질환의 유무, 그리고 환자의 선호도 등을 고려해 개인별로 여성호르몬제의 사용 여부와 기간 등을 다르게 하는 맞춤식 처방에 대해선 괜한 걱정은 안 해도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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