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진씨 유죄 검찰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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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은 이 사건을 진형구 (秦炯九) 전 대검공안부장의 개인범행으로 결론을 내렸다.

지난달 秦씨의 발언 직후 들끓는 비난과 진상규명 여론에도 불구하고 "파업유도는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며 단순한 취중 실언 (失言) 으로 치부했던 검찰이 경위야 어떻든 의혹의 핵심을 밝혀낸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일반의 상식으로 생각하기도 어려운 흑색공작이 검찰간부에 의해 이뤄졌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공권력의 신뢰는 또 한번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秦씨가 몸담았던 검찰조직은 물론 국가적인 비극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검찰수사를 통해 파업유도의 실체가 밝혀졌다고 하지만 그것을 이번 사건의 총체적 진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도 미심쩍은 부분들이 남아 있음을 우리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수사 결과대로라면 秦씨가 공기업 구조조정의 모범적인 선례를 만들겠다는 공명심 때문에 자신의 직위와 조폐공사 사장과의 동창관계를 이용해 노조의 파업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식으로는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다. 대검공안부장이 뭐가 아쉬워서 그랬을까. 공명심이나 출세욕이라는 한마디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사건이다.

더구나 검찰조직의 생리로 볼 때 검찰총장의 참모인 대검공안부장이 단독으로 이같은 일을 입안해 처리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또 당시는 공기업 구조조정이 큰 관심사였던 만큼 대표적인 강성노조로 꼽혔던 조폐공사를 대상으로 한 공안차원의 정책적 결정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는 대개 공안 현안에 대해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통해 부처간 입장을 조율해 대처해 왔고 秦씨 역시 공안대책협의회의 한 구성원이었다.

秦씨가 최초발언 당시 기자들에게 "총장에게 보고를 하니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하더라" 고 한 점 역시 김태정 (金泰政) 전 장관이 파업유도 방침을 최소한 알고는 있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그런데도 검찰의 수사 결과는 철저하게 秦씨의 독자행동으로 결말이 나있어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 수사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게 한다.

우리는 이미 검찰의 독자수사 착수 때 '집안수사' 의 한계성을 지적한 바 있다. 검찰수사는 전에 없던 과감성으로 주목받고 나름대로 성과도 거뒀지만 당초 우려대로 노동.시민단체나 야당측의 축소수사라는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제 파업유도 의혹의 규명은 특별검사의 수사와 국정조사에 넘겨지게 됐다. 검찰수사로는 궁금증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의혹의 진상을 밝히도록 정치권은 협상과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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