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중국의 왜곡시정 약속 미흡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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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과 중국이 양국 간 최대 현안이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작업의 해법에 잠정적으로 합의했다. 양국 수교 12주년 기념일에 한.중 양국이 구두(口頭)로 합의한 주요 내용은 ▶중국 측은 중앙 및 지방정부 차원에서 왜곡 시도를 하지 않겠으며 ▶내년 가을학기 초.중.고교 교과서에 고구려사 왜곡 내용을 싣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흡한 점이 없지 않지만 중국이 고구려사 왜곡작업을 중국 정부 차원에서는 더 이상 추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합의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고구려사 해법 마련의 첫발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양국 간 합의가 문서가 아닌 구두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또한 이번 사태는 한국사가 분명한 고구려사를 중국 측이 억지로 왜곡함으로써 비롯된 것인데도 중국이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일체의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점도 아쉬움을 준다. 여기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의 원상복원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향후 이러이러한 일을 하지 않겠다'는 식이다. 한국민의 점증하는 반중(反中)감정을 일시적으로 피해 보자는 미봉책이라는 얘기도 들을 수 있다.

고구려사 왜곡 문제는 한국민의 자존과 민족정체성과 연관된 것으로 한국민은 이를 절대로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다는 점을 중국은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중국이 시대착오적인 중화 패권주의를 추구하지 않고 진정으로 이웃국가들과 선린과 우호의 길을 가겠다면 이번의 약속을 즉각 실천에 옮겨 중국 내 고구려 유적지 안내문은 물론이고 각종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문헌 등을 수정하는 데 착수해야 한다.

또한 중국 지안(集安)지역 등에 산재한 고구려사 유적에 대한 한.중 양국 간 공동조사와 보존방안 등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와 함께 동북아 지역 공통의 역사연구와 화해의 프로젝트를 양국이 주도해 실시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중국 정부와 학계는 지난 12년간 양국이 이룩한 협력의 모델이 전 세계적으로 부러움을 살 정도로 성공한 모델이었던 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한.중 양국은 지난 12년의 성공적인 협력을 보다 더 확대.심화시켜 새로운 전진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그 길만이 중국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서도 긍정적이다. 중국은 역사적 진실의 복원에 하루빨리 능동적으로 복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