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 칼럼

중·일 지도자에 드리는 충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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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근 일본과 이웃 국가들 간 분규는 동북아의 균형이 깨지기 쉽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중국과 일본은 분쟁을 억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들은 그래야 할 이해 관계가 있다. 문제는 최근 보인 강렬한 민족주의가 아시아의 세력 재편과 관련해 중.일 간 전략적 경쟁의 전조가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도쿄(東京)와 베이징(北京)은 이번 사태로 상당한 대가를 치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아직도 이웃 국가에 대한 사과를 요구받고 있다. 고이즈미가 또다시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강행한다면 국내외 우려를 야기하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바라는 일본의 꿈을 요원하게 만들 것이다.

중국은 더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 반일 시위를 방치한 것은 베이징을 떠오르는 '위협'으로 간주하는 많은 외국인에게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됐다. 일본의 보수우익을 겨냥한 시위라지만 일본 사회 모든 분야와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었다. 많은 국가에 과연 중국에 투자하는 것이 옳은 지에 대한 회의감을 가져다 줬다. 중국이란 나라가 극단적인 민족주의 영향을 받기 쉽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양국은 사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중.일 지도자가 만났다. 양국 관리들은 만신창이가 된 양국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도쿄와 베이징이 양국 관계를 회복할 것이란 전망은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최근 사태는 다음과 같은 매우 중요한 장기적 도전들을 예고하고 있다.

-냉전이 끝난 뒤 아시아의 균형 구조는 복잡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중.일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지역경제의 성장을 촉진했다. 또 중국 국방예산의 대폭적인 증가를 가능케 했다. 당연히 일본은 중국이 빠르게 축적하고 있는 군사적.정치적.경제적 역량을 어떻게 이용할 지에 관심을 갖는다.

-일본이 진정한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는 것은 장거리 미사일 개발과 병행된 북한의 핵무기 확보 욕구다. 이에 일본은 '보통 국가'로서 새 안보 역할을 맡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새 안보 책임이 '전투 임무'나 '공격적인' 능력의 확대라는 성격을 피하고 있지만 인접국들은 일본의 군사적 역량 확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걱정이다.

-아시아의 역내 경제 협력은 중.일 간에 지역 내 리더십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동북아에선 새 세대의 정치 지도자들이 출현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 지지를 위해 민족 감정에 신경을 쓴다.

이 같은 사항들은 폭발력을 갖는다. 베이징과 도쿄, 그리고 양국 관계에 이해를 갖는 나라들의 진지하고도 지속적 노력 없이는 두 라이벌이 전략적 경쟁으로 흐를 것이라는 점은 예측 가능하다. 다행히 이를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중.일 지도자들은 무역.투자 부문의 발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군비 경쟁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자원을 다른 목적으로 돌리게 한다고 인식한다. 양국의 근본적 화해 없이는 아시아의 경제 발전이 한낱 꿈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중.일 모두 평양의 핵 야망을 포기시키기 위해 외교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중.일의 경쟁 여파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다른 아시아 국가도 양국에 자제를 요청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는 미국도 그렇게 하리라 믿는다. 중.일이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일 때 미국도 이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가 좋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기적으론 중.일 관계가 악화하지 않기를 바란다. 장기적으론 양국 지도자가 다음 충고를 되새기기 바란다.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신의 뜻에 맡기라'는 것이다.

마이클 아머코스트 전 브루킹스연구소장

정리=유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