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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통령은 보다 깊은 長考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국민회의 지도부에 대한 당직 인선과 '큰 정치' 국정운영방식에 대해 고심했던 것이 지난 주말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청남대 구상' 의 핵심이었던 것 같다.

이제 金대통령과 국민회의는 본격적인 '여름구상' 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큰 정치' 개념은 대통령 (청와대) 중심의 국정운영체계로부터 당과 내각에 권한과 책임을 분산시키는 국정운영 스타일로의 변신을 뜻하는 듯하다.

어떻든간에 국민회의는 당차원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정국에 대한 국민적 불만과 올 여름 후에 닥칠 파행정국에 대한 우려의 원천은 국정운영 스타일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에 문제다.

문제의 핵심은 현 국회 구성의 구조적 성격과 행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집권 정당의 허약성, 그리고 구시대적 정치문화와 관행의 답습에 따른 난마 (亂麻) 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지 한해 반이 됐건만 정치영역에 있어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정치발전을 위해 이룩해 놓은 것이 무엇 하나 없다는 게 비판의 배경이다.

국민들이 대통령과 국민회의의 올 '여름과제' 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됨은 미우나 고우나 간에 정부와 여당이 잘못하면 곧 나라와 백성의 짐으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후 지금까지의 1년반 동안에 과연 '국민의 정부' 라는 이름에 걸맞은 선진정치가 이뤄지도록 대통령과 국민회의가 진정한 노력을 기울여왔느냐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위험수위에 다다라 있다.

야당의 정치행태에도 책임이 있고, 공동정부 운영이라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모든 책임에 대한 상징성은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귀착되는 것이 냉혹한 현실정치의 장 (場) 이다.

'민주주의' 와 '개혁' 이 국정목표였는데 국민의 뇌리 속에는 최저 투표참여율과 혼탁의 극치를 드러냈던 보궐선거들, 국회의원들의 당적이동, 국회의 날치기소동, 장외투쟁 등 역사박물관에나 진열해 놓았으면 좋을 일들이 끊임없이 재현된 기억만 남아 있다.

문제 투성이인 선거제도와 선거구 문제에 대한 소위 개혁입법이 당리당략 중심성 때문에 '개악입법' 이 될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시민들뿐이다.

'50년만의 수평적 정권이동' 으로 호남출신 대통령이 나와서 한 (恨) 을 풀었으니 정치적 지역주의가 퇴장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최근 영남권의 정서는 지난날 호남 정서를 복사하고도 남는다는 빈정거림을 듣는다.

권위주의 정권을 수호하던 소위 '기득권' 과 '권력기관' 에 가장 큰 수모와 핍박을 받은 사람이 金대통령 자신이라고 했기에, 국민들은 새로운 변화를 성급히 희구했었는데 요즘엔 오히려 이러한 말과 실체에 대한 혼돈만 생겼다는 조소를 접한다.

더이상 내각제 문제는 우리 미래를 위한 이상적 정치체제를 선택하자는 논의 주제가 아니라 'DJP경기' 로 전락해가고 있다.

金대통령과 국민회의의 '여름구상' 은 이러한 현실과 비판이 대통령 주변에서 생각하는 일부 '기득권' 과 '반개혁세력' 의 불평이 아니라, 당에 대한 선호와 지역성을 가로지르는 '민심' 의 주요부분이라는 것을 옳게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정치란 힘의 운용만으로도 아니고, 이익의 합리적 거래관계라든가 선심정책의 총화만으로 목표가 달성되는 영역이 아니라는 데 대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당장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것은 '선진정치' 를 일궈내겠다는 '혼' 이다.

이미 金대통령은 대통령직 취임과 동시에 당선시켜준 당과 지역에 대한 의리의 수준이 아니라 대국민 책무를 걸머졌다.

국민들은 그래서 대통령 리더십 속의 '혼' 을 기대해왔던 것이다.

내각제 문제와 지역주의 심화에 따른 정국파행 가능성에 직면한 대통령으로서는 강력한 행정권 자산을 갖고 현존하는 설익은 대립적 정당구조의 틀을 뛰어넘는 거국적 관리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행하는 새로운 정치모델의 창안과 실천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수준에서 어차피 현존 대통령제하의 3당체제로는 정치안정과 정치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인위적 정계개편을 대통령이 주도한다는 것도 무리기 때문이다.

어떻든 바닥권을 향하는 여권에 대한 국민지지 수준을 극복하면서 나라와 정부, 그리고 당의 정치적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땜질식 국면전환 정책으로는 안되게 돼 있다.

문제의 구조적 원인과 국민의 여망에 대한 옳은 인식체계 위에서 정부와 당, 그리고 정당간의 관계 전반에 관련된 대혁신의 준비를 해야만 한다.

김동성 중앙대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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