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가는 유럽 옛음악에 생기 불어넣는 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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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연주 곡목을 정하면 단원 모두가 ‘조사’ 작업에 들어간다. 리허설에서 각자 의견을 발표·토론하며 음악 해석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간다.”

“ 현대적 고(古)음악 연주”를 고집하는 지휘자 매튜 홀스 .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제공]

‘연주자’보다는 ‘연구자’들의 모임을 떠올리게 되는 이 장면은 영국 지휘자 매튜 홀스(34)가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끄는 연주단체를 묘사한 말이다. 그는 18세기 바로크 이전 시대의 음악을 연주하는 고(古)음악 단체 ‘레트로스펙트’(옛 이름 ‘킹스 콘소트’)를 이끌고 있다.

30명 남짓한 단원으로 이뤄진 ‘레트로스펙트’는 1980년 창단한 이래 90장 넘는 음반을 내놨고, 현재까지 1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과 ‘다빈치 코드’ 배경음악을 녹음하기도 했다.

홀스는 ‘레트로스펙트’가 지쳐가는 유럽 고음악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진단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내놨다. “옛 음악을 당시 스타일 그대로 연주하는 우리 방식이 10여년 전 큰 인기를 끌었다. 여러 단체들이 그 명성을 유지하지 못한 것은 ‘토론’과 ‘협업’이라는 정신을 잊었기 때문이다.” 현대식 오케스트라도 객원 지휘하는 그는 “수백년 역사의 대형 오케스트라에는 지휘자의 지시와 연주자의 실행 반복이 있을 뿐”이라고 꼬집고 “이와 차별화하는 것이 고음악 단체 생존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홀스의 경력은 다채롭다. 오르간·하프시코드 연주, 오페라 지휘와 음악학 연구 등을 거쳤다. 그는 “최근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일이 ‘레트로스펙트’와의 연주”라며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는 5세에 성당에서 윌리엄 버드(1543~1623)의 미사곡을 들으며 음악가의 길을 처음으로 꿈꿨다. 이후 12세부터 정식으로 오르간을 공부했다. “지휘자를 등진 채 혼자 벽만 보고 오르간을 연주하는 게 외로워서” 지휘와 이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홀스는 98년부터 ‘레트로스펙트’의 전신인 ‘킹스 콘소트’와 함께했다. 현재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1년에 3주 뿐”일 정도로 세계 각국 무대가 초대하고 싶어하는 고음악계의 스타다.

그는 다음달 서울에서 열리는 ‘제3회 국제 바흐 페스티벌’의 개막 공연을 맡는다. 소프라노 임선혜씨와 함께 헨델·바흐를 이틀에 걸쳐 조명한다. “한국 청중이 고음악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을 경험하게 해주겠다”는 것이 그의 각오다.

김호정 기자

▶헨델 = 10월16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바흐 = 10월17일 오후 8시 세종체임버홀.
02-22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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