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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총리, 한국 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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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그러나 사르코지는 프랑수아 피용 총리에게 어떤 스케줄도 맡기지 않는다. 외국에서도 비서실장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로 직접 전화를 걸어 챙긴다. 하루 평균 7번이나 된다고 한다. 그러면 비서실장은 직접 장관에게 대통령의 주문 사항을 알린다. 당연히 장관들은 모두 사르코지만 바라보게 된다. 얼마 전 프랑스 신문에는 피용 총리가 전화를 받으며 “총리입니다” 했더니 상대편이 “아직도 프랑스에 총리라는 게 있나요?”라고 반문하는 만평이 실렸다. 피용이 사르코지의 쟁쟁한 측근을 제치고 총리로 간택된 건 수더분한 인상에 조용한 성격 덕분이라는 얘기가 나올 만도 하다. 사르코지는 심지어 총리가 내각의 대표로 국회에 나가 연설하는 권한마저 가져다 대통령 것으로 만들었다.

최근 논란이 된 탄소세 도입과 관련, 피용은 사르코지와 다른 견해를 슬쩍 내비쳤다. 그의 임기 중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르코지가 들은 척도 않고 강행하는 바람에 망신만 사고 말았다. 어느 나라에서보다 비중 있는 역할을 지녔던 프랑스 총리라는 자리는 2년여 만에 그렇게 유명무실한 것이 돼버렸다. 사르코지는 집권 2년여 동안 참 많은 일을 했다. 프랑스 사회도 그 덕분에 각 분야에서 바뀔 채비를 하고 있다. 이처럼 일 잘하는 사르코지지만 늘 독선적이고 자기 멋대로라는 비난도 따른다.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프랑스를 총리 없는 나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게 정치 평론가들의 지적이다. 대통령이 총리가 해야 할 일까지 가로채다 보니 모든 일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직접 대통령에게로 쏟아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총리라는 자리가 꼭 지금의 프랑스 총리 같다는 생각이다. 힘없는 총리, 바꿔 말해 ‘전지전능한’ 대통령은 30∼40년 전 군사독재 시절에야 문제될 일이 없었다. 오히려 효율적인 부분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대통령이 G20 정상 만나고, 각 부 장관 보고받고, 국회의 입법 다툼에 신경 쓰고, 시장에서 떡볶이까지 사먹어야 하는 식은 곤란하다.

그러니 이제라도 총리를 내각의 진정한 수장으로, 국회의 카운터 파트너로 나름의 역할을 주면 어떨까. 대통령제라는 시스템을 탓할 게 아니라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총리의 역할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총리가 자유롭게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여기에 대통령이 귀 기울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새 총리에게 제대로 힘을 실어준다면 정권이 독선적이니 하는 비난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2년간 ‘안티 이명박’ 세력에게 발목 잡혔던 나랏일도 탄력을 받을 것 같아 더욱 기다려진다.

전진배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