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기 왕위전] 서봉수-조훈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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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300번 싸운 두 라이벌…정석 벗어난 포진

제1보 (1~16) =본선 12국에서 서봉수9단은 임선근9단을 불계로 꺾어 2승1패. 이 판은 제13국이다.

리그전인데 徐9단이 연속 대국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그만큼 한가하다는 의미다. 세계 바둑사에 길이 남을 한국의 4인방 중에서 徐9단이 가장 먼저 쇠퇴의 기미를 드러낸 것은 놀라운 일이다.

생명력의 화신이고, 야성의 상징이며, 한국적인 실전파의 거두 徐9단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반면 서봉수의 영원한 라이벌 조훈현9단은 얼마전 중국에 가서 이창호9단을 꺾고 춘란배 우승컵을 가져왔다. 이 대회가 시작될 때 어느 누구도 曺9단의 우승을 점친 사람은 없었다.

그가 실력은 있다손 치더라도 숱한 강자들의 숲을 연속으로 돌파하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曺9단은 그 일을 해냈다. 우승하고 돌아온 曺9단은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

다시 두 사람이 만났다. 3백번 싸워 2백번 지고 1백번을 이긴 徐9단은 그러나 曺9단만 만나면 투지가 샘솟는다. 曺9단의 흑1은 노타임인데 徐9단의 백2는 7분의 장고수다.

첫수부터 변칙으로 나오자 曺9단의 눈썹이 초승달처럼 휘어진다. 그래도 흑3은 온건하다.

백4도 5분. 徐9단은 꽉찬 기합으로 필승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曺9단도 이를 깨물며 바둑판 앞으로 바짝 다가선다. 그러고는 빈 귀를 놔둔 채 5로 걸쳤고 이때부터 이전에 결코 볼 수 없었던 괴이한 포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6부터 기 (氣) 싸움이다. 서로 손빼고 서로 응징한다. 정석을 따른다면 흑7에 백 '가' 로 받아야 하지만 ( '나' 도 온건하다) 徐9단은 16분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백8로 달린다. 이때 흑9가 일류의 감각이었다고 한다. 백의 응수가 어렵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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