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언론 길들이기' 나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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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세청이 세계일보에 대한 정기법인조사를 통보한 데 이어 중앙일보 관계사인 보광그룹 3개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전격 착수해 정부가 본격적인 언론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야당은 이를 "언론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 라고 규정, 정치쟁점으로 삼고 있다.

국세청은 정기적인 법인세무조사와 명백한 탈루혐의 포착 등 필요한 때 특별 법인세무조사를 하고 있다.

이는 통상적인 국세청의 세정업무로 어떤 기업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일보와 보광에 대한 세무조사가 착수된 시점이나 경위 및 그동안 표출된 권력측의 대 (對) 언론 불만 등을 종합해볼 때 과연 이번 세무조사가 세정 (稅政) 본연의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인가에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법인세무조사는 전국 법인수가 10만개에 이르는 데다 국세청 인력 부족으로 보통 5~10년마다 통상 2주 기간으로 한번 이루어지며, 조사 착수 1주일 전에 세무조사예정 통지문이 해당기업에 보내진다.

그러나 보광그룹 3개사에 대해선 이런 절차가 없었다.

국세청 직원 50명이 지난달 29일 들이닥쳐 7~8월 2개월간 세무조사를 통보했다.

더구나 3개사 중 ㈜보광은 98년의 정기법인조사를 포함해 90년대 이래 수차례 세무조사를 받았는데 또다시 대상이 됐다는 것은 납득키 어렵다는 것이다.

시기도 문제다.

지난 4월 이래 터져나온 각종 의혹사건으로 민심이반 현상에 직면한 정부가 재벌.관료.정치인.언론에 대한 강도높은 사정으로 국면전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권력주변엔 물론 정가에 나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검찰의 사정방침 시달에 맞춰 기업 세무조사 착수 등으로 그런 조짐이 현실화하는 가운데 언론사 세무조사가 벌어지고 있으니 정치개혁시민연대가 "왜 하필 이 시기인가 하는 의구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고 의아해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권력쪽의 대 (對) 언론 불만표출을 주목한다.

"해당 언론사들이 현 정부의 실정에 대해 비판적 논조를 견지해온 점에서 시중에는 보복설과 길들이기설이 강하게 유포되고 있다" 는 이회창 (李會昌) 한나라당총재의 시각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와 세계일보가 최근 일련의 의혹사건에서 정부에 비판적으로 보도한 데 대해 권력쪽에서 불편해 하고 있다는 얘기를 우리는 직.간접으로 듣고 있었다.

야당은 물론 시민단체도 "항간에는 언론의 '여론몰이' 에 대한 보복적 조치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고 보는 점은 무얼 뜻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번 세무조사가 언론의 길들이기나 압박용이라고 단정하지도 않지만 이런 정황으로 봐서 정상적 세정차원이라고 납득하기도 어렵다.

정부는 이에 대한 명쾌한 해명을 해 '언론재갈용' 이라는 항간의 의혹을 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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