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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대중화 터 닦은 아버지와 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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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한옥은 나무를 만질 수 있는 곳에서 가르쳐야 해. 교실에서 말로만 가르치는 것과 달라. 한옥을 가르치기에 이만한 분위기를 지닌 곳은 흔치 않아.”

문화재전문위원과 한옥문화원장을 지낸 신영훈(74·사진 왼쪽)씨는 지척에 팔봉산의 여덟 봉우리가 모두 보이는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 옛 구만분교 터에 세워진 지용한옥학교에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신씨는 25일 개교한 이 학교의 교장이다. 그의 딸 지용(44·오른쪽)씨가 설립한 ㈜한옥과문화의 부설 학교다. 신씨는 학교에 올 때마다 마당 한구석에 있는 40여 년 된 소나무에 고개 숙여 인사하고 줄기를 쓰다듬는다.

중앙고 재학시절 주왕산(주시경 선생의 아들)선생의 조수를 하면서 우리 문화를 공부한 인연으로 졸업 뒤 국립박물관에 들어간 신씨는 당시 학예관이었던 임천 선생 밑에서 한국건축을 배워 숭례문 중수(62년) 공사를 비롯해 덴마크 국립박물관 백악산방, 송광사 대웅보전, 진천 보탑사 삼층목탑 등 국내외 수많은 전통 건축물을 지었다. 99년부터는 한옥문화원장을 맡았고 2008년엔 한국건축문화대상의 ‘올해의 건축 문화인상’을 받았다.

신씨는 “현재는 아파트에 많이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한옥에서 한복을 입고, 한식을 먹는 등 한국식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이 많다”며 “실제 한옥 붐이 조금씩 일기 시작했지만 이를 제대로 일러주는 공간이 별로 없어 아음 한구석이 허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옥을 재현하려면 식견을 가진 대중을 양성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딸이 내 뜻을 이해하고 학교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미술사학(이화여대)을 전공하고 아버지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한국건축을 익혔던 지용씨는 2007년 한국불교문사업단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학교 설립을 준비했다. 이 일에는 한국건축을 전공하고, 강화도 학사재 공사의 현장 감독을 지낸 사위 김도경 강원대 교수(건축학부)도 적극 거들었다.

이광복 대목장(기능보유자)을 비롯해 심용식 소목장(무형문화재), 기획 및 설계 등 각 분야 전문가가 참여해 이론과 실기를 원스톱으로 지도할 지용한옥학교는 전통건축 기능인을 양성하는 것과 함께 현대에 맞는 한옥의 연구개발, 한옥 컨설팅과 시공을 통한 대중화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한국건축박물관도 조성할 방침이다.

신씨는 “한옥의 메카가 될 학교는 단순히 기능인만 양성하는 곳이 아니고 철학과 문화 등을 겸비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이 땅에 지을 집은 어떤 것이 바람직한지를 탐구하는 공간으로 가꾸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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