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 사과에 담긴 뜻] '민심은 하늘' 몸낮춘 DJ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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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평생을 통해 즐겨 쓴 한자성어가 있다.

경천애인 (敬天愛人) 이다.

위민여천 (爲民如天) 이란 글도 쓴다.

'국민의 정부' 라는 이름도 거기서 나왔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국민이 주인되는 정치를 국민과 함께 반드시 이뤄내겠다" 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김태정 (金泰政) 전 법무부장관 파문.옷 로비사건.검찰의 파업유도 의혹.손숙 (孫淑) 전 환경부장관의 격려금 파동을 거치면서 이런 결의는 헝클어졌다.

그 과정에서 민심 외면과 권력 오만이라는 여론 질타도 있었다.

과거 지지기반이었던 노동계와 일부 시민단체의 외면 현상 앞에 국정관리의 적신호가 켜졌다.

국정의 그런 흐트러짐을 추스르기 위해 金대통령은 초심 (初心) 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25일 기자간담회를 통해서다.

"더욱 겸허하게 귀 기울여 민심을 잘 알도록 하겠다" 고 다짐한 것이다.

金대통령은 '민심수용에 인색하다는 비판도 있다' 는 지적에 "내 정치적 목표 중 하나가 국민의 뜻을 하늘같이 여겨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 환기했다.

"그런데도 몇몇 사건으로 부정적 인식을 일시나마 국민에게 준 것은 안타까운 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 고 말했다.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얼마 전까지와는 대조된다.

옷 로비 의혹 제기를 '마녀사냥' 식 여론몰이라고 했던 金대통령이다.

국정혼선 비판을 '반개혁세력의 저항' 이라고 했던 국민의 정부다.

金대통령이 생각하는 국정운영의 재출발은 '민심 우선' 이다.

청와대에 민정수석비서관실을 부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민심의 국정 반영방법과 정책수단이다.

金대통령은 그 시작을 '중산층.서민대책' 으로 내걸었다.

金대통령은 실업률을 올해 말까지 5% (현재 6%) 로 낮출 것을 약속했다.

내년 상반기면 실업자가 1백만명 이내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2조5천억원을 중산층.서민대책에 투입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이미 국민생활보장 기본법안 마련에도 착수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金대통령은 IMF로 상대적으로 많은 상처를 입은 서민과 중산층의 민심을 먼저 치료하겠다는 구상" 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생사안은 선심정치 논쟁을 일으킬 수 있다.

더구나 총선이 내년 4월이다.

민심 우선정치는 경제보다 정치논리를 중시하는 역효과를 경계해야 한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민심을 알되 그것을 정책에 반영할 때 경중 (輕重) 과 우선순위를 적절히 매겨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를 보고 균형을 갖추려는 국정운영의 뚝심도 필요하다는 건의도 金대통령에게 올라가고 있다.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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