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해빙무드… 핵무기 감축협상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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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과 러시아가 20일 새로운 핵무기 감축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하는 등 코소보 사태를 둘러싸고 냉각됐던 미.러 관계에 다시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독일 쾰른의 G8 (서방 선진7개국+러시아) 정상회담 폐막 직후 별도 회담을 갖고 악화된 양국관계 복원에 주력키로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과거 일은 다 잊어버리자. 양국간 관계는 코소보 사태 이전보다 더욱 발전할 것" 이라고 말했다.

옐친 대통령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싸움 뒤 관계를 개선하는 것" 이라고 화답했다.

◇ 합의내용 = 양국 정상은 앞으로 3단계 전략무기 감축협정 (START Ⅲ) 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이 자리에서 옐친 대통령은 아직 러시아 의회를 통과하지 못한 2단계 협정 (START Ⅱ) 의 비준을 위해 러시아 국가두마 (하원)에 압력을 가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측에서 그동안 꾸준히 요청해온 탄도탄 요격미사일 (ABM) 협정을 변경시키기 위한 협상도 추진키로 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이 러시아의 빠른 경제회복을 위해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옐친 대통령은 이밖에 존 F 케네디 전 미 대통령의 암살에 관한 비밀해제 문서라는 '보너스' 를 클린턴에게 전달했다.

클린턴은 정상회담이 끝난 후 "옐친 대통령은 강력하고 단호하다" 며 칭찬했다.

◇ 배경 = 이같은 해빙무드는 그동안 코소보 사태로 유발된 양국간의 갈등이 계속돼서는 서로에게 이로울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미국은 비록 경제위기에 처하긴 했지만 여전히 핵강국으로 남아 있는 러시아를 적으로 만들어서는 곤란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특히 베오그라드의 중국 대사관 오폭사건과 핵기술 절취문제로 중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상태에서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은 시급한 과제다.

러시아도 경제난 극복을 위해 미국과의 협력 재구축이 절실하다.

국제통화기금 (IMF) 의 구제금융 지원, 파리클럽과의 채무상환 일정 재조정 등은 미국의 협조 없이는 안되는 일이다.

나토의 유고공습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러시아는 이후 코소보 사태의 외교적.평화적 종식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손상된 자존심을 상당수준 회복했다.

미국에 접근하기도 그만큼 용이해진 셈이다.

◇ 전망 = 미.러 양국의 이같은 해빙무드는 당분간은 계속되겠지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물론 낙관할 수 없다.

당장 미국과 관계가 악화돼 있는 중국의 입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가 자국의 최신예 전폭기 수호이30 72대를 중국에 판매키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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