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집유 … 박연차 비리 줄줄이 유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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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23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등으로부터 2억원가량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민주당 이광재 의원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억48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회장에게서 각각 10만 달러, 2만 달러를 받은 혐의에 대해선 유죄를 선고했으나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보냈다는 신성해운 자금 1000만원 등은 무죄로 판단했다. 이 의원은 선고 직후 “반드시 결백을 입증하겠다”고 말했다. 이로써 올해 우리 사회를 소용돌이 속에 빠뜨렸던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1심 재판이 종착역에 들어섰다. 지금까지 1심이 마무리된 피고인 19명에 대해 모두 유죄가 선고됐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박 전 회장의 진술에만 의존한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에 직면했던 검찰로선 ‘명예 회복’의 전기를 잡은 것이다.

금품 대부분이 현금으로 오간 뇌물·정치자금 사건에서 유죄가 잇따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간의 재판을 분석해 보면 박 전 회장의 일관성 있는 진술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게 사실이지만 검찰이 거미줄처럼 쳐놓은 보강 증거들의 힘도 작지 않았다.

우선 박 전 회장의 여비서인 이모씨가 작성한 다이어리에는 박 전 회장의 하루 스케줄이 시간·장소와 함께 담겨 있었다. 특히 일부 피고인이나 참고인이 전화로 박 전 회장에게 남긴 감사 말까지 기재돼 있었다. 박 전 회장 측과 피고인들 사이의 전화 통화 내역도 증거로 제출됐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측근인 정승영 전 정산개발 사장 등이 돈을 줬다고 진술한 시점에 통화가 집중됐을 경우 정황 증거로 인정했다.

그럼에도 검찰의 수사 방식을 둘러싼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노명선 교수는 “범죄 단서가 있으면 수사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볼 때 수사 내용이나 결과에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사생활)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조사 내용이 실시간으로 흘러나와 피의자를 압박한 부분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형 수사 때면 일곤 하는 정치적 논란을 어떻게 불식시키느냐도 숙제로 남아 있다.

권석천·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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